정치타임

정치타임

이진숙 과방위 입성에 야당 "피고발인 안 돼"

 재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한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첫 상임위원회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선택하자 국회가 정면충돌 양상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의원이 과거 방송통신위원장 시절 업무상 배임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여러 의혹으로 과방위 차원에서 고발당한 피고발인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고발한 당사자와 같은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논의하는 상황 자체가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려운 코미디라며 즉각적인 보임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야권은 특히 다가올 10월 국정감사에서 발생할 이해충돌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의원이 방통위원장으로서 수행했던 과거의 활동들이 이번 국정감사의 핵심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민주당 측은 피감기관의 수장이었던 인물이 감사자가 되어 자신을 방어하는 격이라며, 국회 윤리자문위원회를 통해 적격성 여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의원의 과방위 배정이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진숙 의원은 이러한 파상공세에 대해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상임위 배정은 국회법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된 문제이며, 과방위원으로서 전문성과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자신을 향한 야당의 집단적인 사퇴 압박을 두고 신입생에게 가해지는 집단 괴롭힘과 다를 바 없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 의원은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정 활동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반민주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향한 야당의 공격을 초법적인 정치 공세로 규정하고 엄호 사격에 나섰다. 여당 의원들은 특정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을 남발하고, 이를 빌미로 상임위 활동을 막으려 한다면 의회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야당에도 당에 의해 고발당한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민주당의 논리대로라면 그들 역시 모든 상임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역공을 펼쳤다.

 


논쟁의 불씨는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재판과 법제사법위원회 구성 문제로까지 번졌다. 국민의힘 측은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 의원들이 법사위에 대거 포진해 방어막을 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해충돌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상임위가 특정 정치인을 위한 로펌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이 의원의 배정을 문제 삼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은 정책 질의보다는 서로의 자격론을 따지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며 회의장을 냉각시켰다.

 

결국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는 개회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고성과 야유 속에 정회되는 파행을 겪었다. 여야 간의 감정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가운데, 이 의원의 거취를 둘러싼 갈등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방송 장악 논란과 과학기술 예산 등 산적한 현안을 다뤄야 할 과방위가 인물 검증과 정치적 공방의 늪에 빠지면서 향후 국회 운영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