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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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홀란 사로잡은 머리끈, 정체는 춘천 ‘끄네끼’


세계적인 축구 스타 엘링 홀란이 경기장 안팎에서 착용해 눈길을 끈 머리끈이 강원 춘천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북중미 월드컵 기간 홀란의 긴 금발 머리를 묶어준 이 제품은 국내 업체가 개발한 브랜드 ‘끄네끼(KKNEKKI)’로 확인됐다.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홀란이 즐겨 착용한 머리끈은 춘천시 남산면 강촌에 위치한 업체 ‘두지’가 생산하는 끄네끼 제품이다. 끄네끼는 두지의 조현태 대표가 1987년 직접 개발한 브랜드로, 이름은 끈이나 줄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에서 따왔다. 외국어처럼 들리는 독특한 브랜드명이지만, 그 뿌리는 한국어 사투리에 있는 셈이다.

 

두지는 2015년 강원도와 춘천시의 지원을 받아 경기도에서 춘천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같은 해 노르웨이 가족기업 본뎁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시장 진출에도 나섰다. 이후 2023년 유통 상표권은 매각됐지만, 제품 생산은 현재도 춘천 공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홀란과 끄네끼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조 대표는 TV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던 중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는 홀란이 자신이 만든 머리끈을 착용한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노르웨이 측 파트너사인 본뎁과 협의해 홀란이 소속된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 색상과 어울리는 커스텀 머리끈을 제작해 선물했다.

 


이 선물은 홀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조 대표는 홀란이 맞춤형 제품을 받은 뒤 주변 동료 선수들에게도 끄네끼를 추천했고, 나아가 본뎁에 지분 투자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장에서 여러 축구 선수들이 끄네끼로 머리를 묶고 뛰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도 밝혔다.

 

이후 홀란은 끄네끼의 공식 브랜드 모델로도 활동하게 됐다. 특히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는 홀란이 직접 고른 8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홀란 에디션’이 출시됐다. 해당 제품은 홀란이 몸담았던 구단과 노르웨이 대표팀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으며,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춘천에서 만들어진 작은 머리끈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의 애착품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기업 제품의 경쟁력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액세서리를 넘어 선수의 개성과 경기 이미지를 완성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조 대표는 끄네끼 이후 새로운 브랜드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기존 브랜드의 유통 상표권을 매각한 만큼 새 판매 브랜드가 필요해졌고, ‘머리를 묶다’는 의미를 살려 ‘졸라매’라는 이름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새 브랜드는 홀란이 착용한 제품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춘천 강촌의 한 공장에서 출발한 머리끈이 세계 축구 무대와 연결되면서, 지역 제조업의 숨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관심을 받고 있다. 홀란이 경기장에서 보여준 강렬한 헤딩만큼이나, 그의 머리를 묶은 ‘춘천산 머리끈’도 전 세계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