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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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서 파국까지, 이카르디·완다 12년 악연 종결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마우로 이카르디가 전 부인 완다 나라와의 지루한 법정 공방에서 마침내 웃었다. 이카르디는 최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탈리아 법원이 완다 측의 과도한 위자료 청구를 최종적으로 기각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번 판결로 이카르디는 매달 수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 지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두 사람의 파란만장했던 인연도 법적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법정에서 완다 측이 요구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완다는 본인을 위한 생활비로 매월 약 4억 원을 요구한 것은 물론, 두 딸의 양육비와 이혼 수당 명목으로도 매달 수억 원의 추가 지급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법부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이러한 청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모두 물리쳤다. 이카르디는 자신의 자산을 지켜내려는 상대 측의 시도가 단호한 법의 심판 앞에 무너졌다며 후련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부터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완다 나라의 전 남편은 이카르디가 존경하던 팀 선배 막시 로페스였으며, 이카르디와 완다의 불륜 사실이 드러나며 로페스와의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렀다. 동료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비난 속에서도 2014년 결혼을 강행한 두 사람은 이후 10년 가까이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뿌리며 축구계의 '문제적 커플'로 군림해 왔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관계는 2021년 이카르디의 외도 의혹이 불거지며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이후 수차례의 결별과 재결합을 반복하던 끝에 2024년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고, 완다가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본격적인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다. 이카르디는 당시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법원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고, 결국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카르디는 이번 판결이 이탈리아 사법 시스템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안도감을 표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부당한 요구들이 완전히 종결되었음을 선언하고, 이제 남은 이혼 절차의 마지막 단계를 차분히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나긴 소송 기간 동안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그는 이번 승소를 통해 개인적인 명예 회복은 물론 경제적 손실까지 막아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됐다.

 

한편, 법적 굴레에서 벗어난 이카르디는 이제 선수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갈라타사라이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현재 자유계약 신분인 그는 튀르키예 리그에서 보여준 여전한 득점 감각을 바탕으로 차기 행선지를 물색 중이다. 사생활 논란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가 다시 필드 위에서 골 폭풍을 몰아치며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축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