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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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투표지 발견" 전한길 주장의 진실은?

 보수 성향 유튜버로 활동하는 전한길 씨가 통영시장 선거 재검표 과정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 씨는 자신의 채널을 통해 재검표 현장 밖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며, 유권자가 직접 찍어야 할 선거도장이 인주가 아닌 인쇄 방식으로 제작된 '가짜 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배율 확대 장비를 동원해 도장 자국을 비추며, 붉은색 외에 노란색 점이 섞여 나타나는 현상이 전형적인 CMYK 인쇄 방식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실제 재검표 현장의 상황을 오인하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씨가 영상에서 확대해 보여준 종이는 실제 투표용지가 아니라, 본인이 비교를 위해 직접 제작해 가져온 A4 용지 샘플인 것으로 확인됐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용지가 재검표장 내부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형태라고 못 박았다. 즉, 영상 속에서 확인된 인쇄 흔적은 전 씨가 준비한 샘플의 특성일 뿐, 실제 투표지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었다는 객관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은 셈이다.

 


재검표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국민의힘 천영기 후보 측의 소청에 따라 경남도선관위에서 실시됐다. 전 씨는 천 후보 측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해 투표지 뒷면에 인주가 배어 나오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가짜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그는 현장에서 개인 확대 장비 사용을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검증되지 않은 외부 장비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전 씨는 선관위가 진실 규명을 막고 있다며 재검표장 밖으로 나와 의혹 제기 영상을 촬영했다.

 

선관위는 도장 자국이 뒷면에 비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인주가 종이에 스며드는 정도는 도장을 찍을 때의 압력이나 인주의 상태, 종이와의 접촉 시간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뒷면이 깨끗하다는 이유만으로 인쇄된 용지라고 단정 짓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재검표 과정에서 참관인들이 제기한 이의 사항을 검토했으나, 인쇄된 투표지라고 의심할 만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약 11시간에 걸친 정밀 재검표 결과, 두 후보 간의 표 차이는 기존 44표에서 38표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무효표 중 일부가 유효표로 인정되는 통상적인 오차 범위 내의 변화였으며, 당선자가 바뀌는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 씨의 적극적인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의 정당성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번 재검표는 강석주 후보의 당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현재 온라인상에서는 전 씨의 주장을 맹신하는 반응과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 씨 측이 실제 투표지의 인쇄 여부를 입증하려면, 유튜브 영상이 아닌 정식 선거소송 절차를 통해 법원에 해당 투표지에 대한 객관적인 감정을 요청해야 한다. 과거 대법원 재검표 사례에서도 도장이 뭉개진 사례가 부정선거의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던 만큼, 향후 법적 공방이 벌어지더라도 실제 투표지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 검증 결과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