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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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 '연옥당', 한국 최초 만화계 오스카 거머쥐다

 한국 만화가 산호 작가가 자신의 장편 그래픽노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으로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 ‘아이스너상(Eisner Awards)’을 수상하며 세계 만화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했다. 아이스너상은 프랑스의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미국의 하비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만화상 중 하나로, 한국 작가가 이 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시상식 개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수상은 K-웹툰을 넘어 한국 그래픽노블의 예술성과 서사적 깊이가 북미 시장의 심장부에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아이스너상 주관사인 미국 코믹콘 인터내셔널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4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제38회 시상식에서 총 32개 부문의 최종 승자를 발표했다. 산호 작가의 작품은 ‘최우수 아시아 만화 미국판 부문’에 이름을 올린 쟁쟁한 후보 5편을 제치고 최종 수상작으로 호명되는 영예를 안았다. 1988년 제정된 이 상은 전년도 북미 지역에서 출간된 작품 중 최고의 성취를 이룬 창작자에게 수여되며, 업계 종사자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검증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번 수상은 일본 만화가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장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해당 부문은 2010년 아시아 전역으로 범위가 확대된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나 이토 준지 같은 일본의 거장들이 독식해온 영역이었다. 그동안 김동화, 김금숙, 연상호 등 내로라하는 한국 작가들이 후보에 오르며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터라, 산호 작가의 이번 성취는 한국 만화가 일본 만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췄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수상작인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은 죽은 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돕는 신비로운 케이크 가게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서사다. 망자가 환생에 이르기까지 49일간 건너야 하는 연옥 벌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이승의 가족들이 망자를 위한 특별한 케이크를 주문한다는 독창적인 설정을 담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 손님들의 애틋한 사연과 가게 주인 ‘마고’를 둘러싼 비밀이 촘촘하게 엮이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선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최대 강점이다.

 


산호 작가는 영화 스토리보드 작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만화계에 입문해, 2019년 크라우드펀딩 당시 목표액의 4400%를 초과 달성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미국 다크호스 코믹스를 통해 영어판이 출간되면서 북미 독자들과 만났고, 현재 프랑스와 일본을 포함한 9개국에 판권이 수출될 만큼 글로벌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화풍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번 수상을 한국 만화가 북미 주류 시장에서 확실한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했다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아이스너상은 하비상에 비해 심사 과정에서 대중적 파급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만큼, 한국 그래픽노블이 상업적 잠재력까지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분석이다. 산호 작가의 쾌거는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컬처의 외연을 만화와 그래픽노블 영역까지 넓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창작자들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데 든든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