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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 책임지겠다" 기성용, 한혜진과 초고속 결혼 비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스타 기성용과 연기파 배우 김강우가 방송을 통해 특별한 가족사를 공개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란히 출연한 두 사람은 처형과 제부 사이를 넘어선 끈끈한 동서지간의 우애를 과시했다. 특히 기성용이 배우 한혜진과 연애 6개월 만에 초고속 결혼을 결심했던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가족들의 실제 반응이 가감 없이 공개되면서 온라인상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김강우는 과거 기성용의 결혼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평소 축구 팬으로서 기성용을 응원해왔지만, 막상 처제인 한혜진과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걱정이 앞섰다는 것이다. 그는 설거지를 하던 중 소식을 듣고 그릇을 깨뜨릴 뻔했을 정도로 놀랐다며, 당시 흔치 않았던 8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점과 두 사람의 직업적 특성이 서로에게 잘 맞을지 우려했던 속내를 털어놨다. 오랜 시간 지켜봐 온 처제에 대한 애정이 담긴 걱정이었다.

 


기성용 역시 장모님을 처음 뵙던 날의 팽팽했던 긴장감을 회상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음을 전한 그는, 당시 25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고 밝혔다. 운동선수와 연예인이라는 화려한 직업 이면에 필요한 세심한 케어와 이해를 고려했을 때, 가족들이 느꼈을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갔다는 설명이다.

 

결혼을 향한 기성용의 승부수는 정공법이었다. 그는 장모님을 찾아가 따님을 책임지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전하며 못미더워하던 가족들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오히려 결혼 날짜를 앞당겨 확정 짓는 것이 장모님을 안심시키는 길이라 판단해 4월 첫 인사 후 7월에 바로 식을 올리는 추진력을 보였다. 이러한 기성용의 책임감 있는 태도는 결국 완고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여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고, 불안했던 초고속 결혼은 축복 속에 성사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사제지간 같았던 동서들의 관계는 누구보다 편안한 사이로 변모했다. 김강우는 첫째 사위인 자신보다 막냇사위인 기성용을 장모님이 더 편하게 대하신다며 유쾌한 질투를 드러내 웃음을 자아냈다. 결혼 전에는 직업과 나이 차이라는 현실적인 벽 때문에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는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김강우는 2010년 한혜진의 첫째 언니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기성용과 한혜진 부부는 2013년 결실을 맺어 슬하에 딸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연예계 대표 자매인 한혜진 가문의 두 사위가 보여준 솔직 담백한 토크는 스타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평범하고도 따뜻한 가족애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방송 이후에도 오랫동안 회자되며 대중에게 긍정적인 가족 모델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