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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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홍광호의 베토벤, 흥행 돌풍의 비결

 공연 예술의 세계에서 초연의 미흡함을 딛고 재연에서 완성도를 꽃피우는 사례는 드물지 않지만, 2026년 다시 돌아온 뮤지컬 '베토벤'의 변신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난 2023년 국내 첫선을 보였을 당시 이 작품은 위대한 음악가의 삶과 명곡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각본과 넘버의 부조화로 인해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년의 공백기 동안 제작진은 관객들의 비판을 수용하여 극의 뼈대부터 다시 세웠고, 그 결과 인물의 내면적 고뇌에 온전히 집중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시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베토벤과 안토니(토니)의 관계 설정으로, 초연 당시 불호의 원인이었던 멜로 라인을 과감히 걷어내고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깊은 우정으로 재정립했다는 점이다. 유부녀인 토니와의 감정선을 불륜이 아닌 인간적 유대로 치환함으로써 관객들은 베토벤이 겪는 고립감과 구원에 더욱 밀도 있게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홍광호와 김지현 등 실력파 배우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는 자칫 급격해 보일 수 있는 감정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다.

 


극의 전개 방식 또한 인물의 역경과 창작자로서의 고통을 파고드는 정공법을 택하며 드라마틱한 서사를 완성했다. 1막이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다소 정적인 호흡으로 진행된다면, 2막은 베토벤의 육체적·정신적 붕괴가 극에 달하며 관객들을 압도하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청각 장애라는 음악가로서의 사형 선고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베토벤의 투쟁은 귀족 사회의 냉대와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토니와의 정신적 교감과 맞물리며 결말을 향한 거대한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다.

 

작품의 음악적 토대는 베토벤이 남긴 불멸의 명곡들로,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부터 교향곡 '합창'에 이르기까지 총 51곡의 넘버가 극의 기승전결을 촘촘하게 채운다. 익숙한 클래식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말의 어색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를 상쇄하는 것은 배우들의 압도적인 가창력과 영리한 연출력이다. 특히 베토벤의 청력 상실과 이명이 심화되는 순간을 음향의 음소거 효과와 조명의 변화로 표현한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느꼈을 실존적 공포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만든다.

 


새롭게 베토벤 역을 맡은 홍광호는 특유의 폭발적인 성량과 세밀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악성(樂聖)' 캐릭터를 구축해냈다. 후대가 칭송하는 성인으로서의 모습 이면에 숨겨진,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완전했던 인간 베토벤의 내면 전쟁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쳐 보인 것이다. 그의 드라마틱한 가창은 베토벤의 음악이 지닌 숭고함과 인간적인 고통을 동시에 담아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한 거장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엔딩 시퀀스는 이 작품이 베토벤에게 보내는 가장 뜨거운 헌사라 할 수 있다. 환호하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토니의 안내로 인사를 나누는 베토벤의 모습은, 배우의 환희와 캐릭터의 비극이 교차하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커튼콜 이후 무수한 악보가 흩날리는 무대 뒤로 퇴장하는 노년의 베토벤은, 불멸의 걸작이 결국 가장 처절한 역경 속에서 꽃피웠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