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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영남루와 용두산 잔도, 밀양의 신구 조화

 밀양의 젖줄인 밀양강은 예부터 수많은 문인과 풍류객들이 모여들던 유람의 중심지였다. 강줄기를 따라 영남루와 금시당 같은 유서 깊은 누정들이 자리 잡아 고즈넉한 멋을 풍긴다. 최근 이 물길을 굽어보는 용두산에 새로운 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밀양의 관광 지형이 바뀌고 있다. 해발 129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벼랑을 따라 설치된 잔도와 전망대가 설치되면서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신흥 명소로 거듭난 것이다. 험준한 절벽에 선반처럼 매달린 길은 강바람을 맞으며 걷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용두산 생태공원의 핵심인 잔도는 폭 1.5m의 평탄한 데크로 설계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313m의 짧은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굽이칠 때마다 밀양강의 풍경이 다채롭게 변해 지루할 틈이 없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방문객들로 활기가 넘치는데, 이는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무료로 개방된 편의성 덕분이다. 잔도를 지나 숲속으로 들어서면 지상에서 최대 10m 높이에 세워진 공중 데크가 나타난다. 나무의 눈높이에서 숲을 거니는 이 길은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뻗어 있어 마치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산 정상에 위치한 25m 높이의 달팽이전망대는 용두산 여행의 정점이다. 이곳에 오르면 굽이치는 밀양강과 광활한 들판, 그리고 밀양 시가지가 360도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왜 이 산에 '용의 머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단번에 이해될 만큼 압도적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마치 용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신비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설계된 전망 시설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밀양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용두산에서 내려와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한국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에 닿는다. 2023년 국보로 승격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영남루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엄격한 관리가 따르는 다른 국보급 문화재와 달리, 이곳은 신발을 벗고 직접 누각 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탁 트인 누각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다 보면 과거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가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게 된다. 영남루의 야경 또한 일품이어서 밤낮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밀양의 잔도 여행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 삼랑진읍 낙동강 변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 영남대로의 험로였던 '작원잔도'의 유적이 이곳에 남아 있다. 시루봉의 암반을 깎아 만든 이 길은 경부선 철도 건설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약 50m 구간만 보존되어 있다. 비록 직접 걸어볼 수는 없지만, 인접한 낙동강 자전거길에서 그 옛날 영남대로를 오가던 이들의 고단함과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용두산의 현대적 잔도와 작원잔도의 역사적 흔적은 밀양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특별한 연결고리가 된다.

 

밀양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잔도와 누각 여행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만끽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용두산의 공중 데크에서 숲의 생명력을 느끼고, 국보 영남루에서 전통의 향기를 맡으며, 작원잔도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과정은 밀양 여행의 백미다. 강물을 발아래 두고 걷는 벼랑길의 짜릿함과 누각에서의 여유로운 휴식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최적의 재충전 시간을 선사한다. 밀양강 물길이 빚어낸 이 길들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과 추억을 전해줄 것이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