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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늪, 미국을 장기전으로 끌어들인다

 중동의 종교적·정치적 갈등이 미국과 이란의 직접 충돌을 넘어 주변국을 끌어들이는 광범위한 지역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라크 내 다수파인 시아파의 종교적 연대감을 지렛대 삼아 영향력을 확대한 이란은 자국의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을 동원해 전장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와 예멘 후티 반군을 앞세워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타격함으로써 미국의 방어선을 분산시키고 세계 경제에 충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단체들의 연합체인 인민동원군(PMF)은 국가 안보 체계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군사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과 미군 기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최근에는 사우디 동부 지역과 리야드의 석유 시설에 드론 공습을 감행했다. 이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치밀한 감독하에 이루어진 작전으로, 걸프 지역의 에너지 공급망을 마비시켜 미국에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란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과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될 경우 국제 유가 폭등과 에너지 안보 위기가 심화되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사우디의 대체 송유관을 집중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여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균열을 만들려는 고도의 심리전이기도 하다.

 

남쪽의 예멘 후티 반군 역시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며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아 상선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국제 해상 수송로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북쪽의 이라크 민병대와 남쪽의 후티 반군으로부터 협공을 받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이에 대응해 사우디는 14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 해상 방위 연합을 창설하며 에너지 공급망 보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직접 중재에 나섰다. 빈 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긴급 통화를 통해 미국의 대규모 이란 공습이 가져올 파국적 결과를 경고하며 역내 긴장 완화를 요청했다. 미국의 공습이 이란의 보복을 불러일으켜 중동 전역이 불바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공습 계획을 보류하며 이란과의 합의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이란 측이 이를 부인하며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현재 중동은 이란이 설계한 장기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양국 간의 분쟁을 넘어 지구촌 전체의 안보 지형을 흔들고 있다. 이란은 대리 세력을 통한 단계적 확전 계획을 비밀리에 실행하며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무력화하려 시도 중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이 방어 연합을 구축하며 맞서고 있지만, 이란의 '저항의 축'이 가동하는 제2전선이 확대될수록 중동의 평화는 더욱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