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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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보다 사진 전송, 주객전도 된 유치원 교사

 대한민국 유치원 교사들이 과도한 서류 업무와 악성 민원, 그리고 타 부서에서 떠넘긴 행정 업무로 인해 심각한 교육 활동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달 전국 공·사립 유치원 교사 2,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장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는 정량적 평가 업무에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응답자의 70% 이상이 일정한 주기에 맞춰 '놀이이야기'를 작성해 학부모에게 공개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곧 수업 준비 부족과 안전사고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부모와의 소통 창구인 모바일 알림장 역시 교사들에게는 또 다른 족쇄가 되고 있다. 아이들의 활동 사진을 유아별로 균등하게 배분하여 전송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나 강제적인 전송 의무가 교사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많은 교사가 사진 수량이나 전송 횟수에 대한 정량적 기준에 얽매여 있었으며, 이로 인해 정작 아이들의 눈을 맞추고 대화해야 할 시간에 카메라 렌즈를 통해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현장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악성 민원이 발생했을 때 학교 차원의 대응팀이 전담하여 처리하는 경우는 10% 남짓에 불과했으며, 대다수의 교사가 홀로 민원을 감당하거나 기관의 소극적인 태도 속에 무마를 강요받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정당한 생활지도조차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은 학부모의 보복이나 관리자의 눈치 때문에 교권보호위원회 신청조차 포기하고 있으며, 이는 교직 이탈 고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행정실이나 방과후 인력이 담당해야 할 업무가 교사에게 전가되는 구조적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통학버스 관리부터 유아학비 정산, 급·간식 업무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무관한 일반 행정 업무의 95% 이상을 교사가 직접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충격적이다. 방과후 돌봄 업무 역시 담임교사가 시스템 입력이나 간식 준비 등을 떠맡는 경우가 허다해, 교사가 오롯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업무 하중을 줄이기 위해 방과후 전담 실장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사들의 기본적인 권리인 복무권 보장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 교사를 구하기 어렵거나 동료 교사에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보건휴가나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교사가 절반을 넘었다. 관리자의 눈치를 보느라 아파도 쉬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 문화는 유치원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근 보결교사 인력풀을 확대하여 교사가 부재할 때 교육 공백을 즉각 메울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교조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 당국에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놀이 기록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사진 전송 의무와 같은 보여주기식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민원 대응 체계를 기관 중심으로 재편하고, 행정 업무를 행정실로 명확히 이관하여 교사를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청 차원의 지침 정비와 인력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유치원 교실의 위기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