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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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폐지, 72년 만에 사법 체계 격변

 대한민국의 형사사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주도로 가결된 이번 법안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72년 동안 유지되어 온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재석 의원 178명 중 찬성 175명의 압도적인 지지로 법안을 처리했다.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무제한 토론을 벌였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직전 퇴장하며 강력히 항의했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입법을 막아내는 데 실패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는 데 있다. 검사는 앞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를 할 수 없으며, 기존에 보유했던 보완수사권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다만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은 유지되는데, 이 경우 경찰은 1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치고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또한 개정안에는 위법한 수사를 근거로 공소가 제기되었을 때 법원이 이를 기각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어, 수사 기관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통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이번 법안 통과를 국민의 명령에 따른 검찰개혁의 마침표라고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민주당 측은 검찰이 본연의 임무인 공소 유지와 인권 보호에만 전념하게 됨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의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었다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는 다음 달 초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법안 시행에 따른 변화와 후속 조치를 상세히 설명할 계획이다. 수사는 전문 수사 기관이 전담하고 검찰은 이를 법률적으로 통제하는 구조가 정착되면 국민의 기본권이 더욱 두텁게 보호될 것이라는 논리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입법을 의회 민주주의의 폭거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를 선언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해당 법안이 특정 정치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대통령이 즉각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법안 시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법안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가용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 기능 폐지가 결국 거악 척결 역량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야당의 거부권 행사 요청에 선을 그었다. 성기홍 홍보소통수석은 가결 직후 브리핑에서 이번 개정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사실상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국무회의를 통해 법안을 공포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따른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 수사 역량 강화 등 후속 대책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패스트트랙 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국회법 개정안도 상정되어 여야 간의 긴장이 극에 달했다. 국민의힘은 즉각 필리버스터에 돌입하며 저항했으나, 7월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됨에 따라 토론은 자동 종결되었다. 이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8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는 대로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보여, 입법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와 야당의 법적 대응이 맞물리면서 2026년 여름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