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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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는 육군 탓" 이재명 발언에 육사 통합론 격랑

 정부가 추진 중인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방안이 대통령의 '육사 책임론' 발언과 맞물리며 정치권의 거대한 소용돌이로 번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의 역사적 과오를 육군 사관학교 출신들의 독점 구조와 연결하며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주문하자, 야권은 이를 군의 전문성을 말살하는 정치적 공격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래전 대응을 위한 합동성 강화를 내세웠던 국방 개혁안이 순식간에 과거사 청산과 계파 갈등의 시험대로 변모한 양상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5일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직설적인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과거 군사 쿠데타가 모두 육군 주도로 벌어졌음을 상기시키며, 특정 출신이 고위 장성을 독식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 사관학교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국군사관학교'는 대전 자운대에 통합 캠퍼스를 두고 생도들이 4년 내내 함께 생활하며 AI와 우주 등 공통 교육을 받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강한 어조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천 원내대표는 특정 인물의 일탈을 이유로 모교 전체에 책임을 묻는 논리라면,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나온 서울대학교나 충암고등학교 역시 폐지해야 하느냐며 반문했다. 그는 육사 교육 과정에서 쿠데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를 근거로 현재의 양성 체계를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군사적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야권은 각 군의 고유한 작전 환경과 기본기를 다져야 할 생도 시절에 교육을 하나로 묶는 것이 오히려 전문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해군사관학교가 위치한 진해의 지리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내륙인 대전에서 통합 교육을 하는 것이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한 장교 양성에 적합한지에 대한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군별 정체성이 희석될 경우 장기적으로 전투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반발은 집단적인 행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야권 의원 42명은 대통령의 발언 철회와 통합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공동 발의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들은 정부가 내세운 '합동성 강화'라는 명분이 실제로는 육사 출신을 배제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었다고 규정했다. 군 내부에서도 침묵 속에 상황을 주시하며 장교 양성 체계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국방부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는 10월 국군사관학교 설립을 위한 세부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쿠데타 전력'을 언급하며 육사를 정조준한 이상, 사관학교 통합 문제는 단순한 국방 정책을 넘어 정권의 역사관과 군 통수권의 정당성을 둘러싼 극심한 진영 대결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장교 양성 체계의 백년대계가 정치적 쟁점에 매몰되면서 군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