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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첫 방한, DMZ 평화 띠 잇나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장관으로서 바티칸의 핵심 요직을 수행 중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내년 8월 예정된 레오 14세 교황의 방한과 관련해 파격적인 평화 행보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휴가차 고국을 찾은 유 추기경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교황이 한반도 문제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으며, 특히 비무장지대(DMZ) 방문과 방북 추진에 대해 기꺼이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해 요청했던 사항에 대한 화답으로, 1년여간 물밑에서 진행되어 온 한반도 평화 논의가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레오 14세 교황의 이번 방한은 내년 8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는 가톨릭 최대 청년 축제인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이루어진다. 역대 교황으로서는 네 번째 한국 방문이며, 교황 즉위 전부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레오 14세에게는 첫 공식 방한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비가톨릭 국가에서 열리는 최초의 사례이자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개최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준비위원회는 최대 100만 명 이상의 전 세계 젊은이들이 서울에 모여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를 나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교황의 DMZ 방문과 이를 통한 남북 대화의 재개 여부다. 유 추기경은 과거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에게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평화 교육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이어지는 철책선을 따라 수십만 명의 청년이 인간 띠를 형성하는 장관을 연출함으로써 전 세계에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제안은 레오 14세 교황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현재 교황청과 한국 정부는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도 유 추기경은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그는 교황청 대사들이 각국에서 북한 측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며, 북한과 우호적인 국가들을 통한 중재 역할도 고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최종적인 결정은 북한의 자세에 달려 있지만, 닫힌 문을 두드려 조금씩 열어가다 보면 결국 넓은 길이 열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 추기경은 필요하다면 본인이 직접 사전 정지 작업을 위해 방북할 의사가 있음을 강조하며, 남북 관계의 단절을 끊어낼 다리 역할을 자처했다.

 


유 추기경의 이러한 평화 철학은 그의 개인적인 삶의 궤적과도 맞닿아 있다. 6.25 전쟁 중에 태어나 아버지를 잃은 전쟁의 피해자이자, 청년 시절 철책선에서 32개월간 군 복무를 했던 그는 누구보다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체감해 온 인물이다. 새와 구름은 자유롭게 오가는 철책 앞에서 인간만이 총칼을 겨누는 현실을 불행이라 말하면서도, 보초를 서며 바라본 별빛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그의 경험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간절한 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과거 네 차례의 방북을 통해 확인한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북측과의 교류 재개를 희망했다.

 

내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반도의 아픔을 공유하고 평화를 노래하는 거대한 장이 될 전망이다. 유 추기경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교황이 전할 응원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남은 임기 동안 남북이 서로 왕래하고 도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황의 방한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지금, 바티칸과 서울을 잇는 평화의 가교가 8년간 멈춰 섰던 남북 대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