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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안보 도박, 한미훈련 전격 축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의 규모를 줄이라고 지시해 파장이 일고 있다. 18일 주요 외신과 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대북 외교 재개를 위한 유화책으로 풀이하면서도, 한미동맹의 근간을 시험대에 올리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 조치가 단순한 외교적 포석을 넘어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 속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경제적 압박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오며 우려를 더하고 있다.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 선정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어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실리와 안보 현안을 결합하는 특유의 거래적 방식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짚었다. 한국의 투자 약속 이행이 더디고 중동 정세에 대한 지원이 소극적이라는 판단이 들자, 동맹의 핵심인 연합훈련을 카드로 꺼내 들어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결정이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메이슨 리치 한국외대 교수는 이번 사례가 미국이 동맹국으로서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신뢰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가속화 논의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안보 공약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방위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중적인 대외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다. 뉴욕타임스(NYT)는 핵 개발 직전 단계인 이란과는 전쟁을 불사하면서,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는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모순적 태도를 비판했다. 조엘 위트 전 국무부 관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한국을 위협하는 데 집중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진의를 오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실질적인 비핵화 성과 없이 북한에 시간만 벌어주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군사적 대비 태세의 약화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최근 미국이 중동 전쟁에 자원을 집중하며 한국 내 사드(THAAD) 자산 일부를 재배치하고 항공모함 전력을 이동시킨 상황에서 연합훈련까지 축소되는 것은 위험한 신호다. 이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한미 연합 방위 체계가 느슨해졌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1976년부터 이어져 온 동맹의 초석이 흔들리면서 동북아시아 전체의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안보를 경제적 거래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드론 공격과 사이버전 등 현대전 대응을 위해 준비된 올해 UFS 훈련이 축소되면서 실전 대응 능력 저하가 불가피해졌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명분은 내세웠지만, 동맹의 신뢰를 담보로 한 이번 도박이 비핵화라는 실질적 결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트럼프식 거래 외교가 초래한 안보 불확실성은 한미 양국 정부에 무거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