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Travel

시내 40도·계곡 0.9도, 밀양 얼음골의 반전

 경남 밀양 시내가 40도라는 살인적인 기온을 기록하며 숨이 턱 막히는 열기에 휩싸였던 지난달 말, 해발 1189m 천황산 중턱에 위치한 얼음골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결빙지 앞에 설치된 온도계가 가리킨 숫자는 놀랍게도 0.9도였다. 시내를 달구던 폭염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계곡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겨울의 한복판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발을 담그면 10초도 버티기 힘들 만큼 차가운 계곡물과 바위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자연이 빚어낸 천연 냉장고의 위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러한 신비로운 현상의 비밀은 얼음골 특유의 지형 구조인 '너덜지대'에 숨어 있다. 겨울 동안 바위틈 깊숙한 곳에 저장되었던 차가운 공기가 여름철 외부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밖으로 밀려 나오는 원리다. 해발 600m 지점의 결빙지에 다다르면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강한 한기가 피부를 파고든다. 과거에는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맺힐 정도였으나, 최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얼음이 유지되는 기간이 짧아져 6월 이후에는 직접적인 얼음을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도 공존한다.

 


폭염을 피해 몰려든 인파로 얼음골 일대는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시내 거리는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해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얼음골 계곡은 나무 그늘과 너럭바위마다 자리를 잡은 피서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관리소 측에 따르면 여름철 방문객 수는 다른 계절에 비해 2배 이상 많으며, 8월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2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차가운 골짜기를 찾는다. 피서객들은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쾌적함에 감탄하며 계곡을 떠나지 못했다.

 

얼음골 인근의 호박소 계곡 역시 피서 명당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웅장한 풍경을 자아내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수박을 나눠 먹으며 더위를 잊는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는 시각적으로도 시원함을 선사하며, 벼랑 끝을 따라 조성된 잔도(棧道)를 걷다 보면 밀양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땀방울을 씻어준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걷는 벼랑길 체험은 얼음골과는 또 다른 매력의 이색 피서 코스로 자리 잡았다.

 


자연의 신비를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도 결실을 보았다. 지난 4일, 총사업비 145억 원이 투입된 '얼음골 신비테마관'이 문을 열었다. 4층 규모의 이 시설은 얼음골이 형성되는 과학적 원리를 전시와 영상, 체험형 콘텐츠로 풀어냈다. 특히 얼음골의 사계를 화려한 빛으로 재해석한 미디어아트관은 방문객들이 인생 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서는 명소로 급부상했다. 계곡에서 몸으로 직접 느낀 한기를 시각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매년 여름의 위세가 강해지고 있지만, 밀양 얼음골은 여전히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진 도심을 벗어나 0.9도의 한기를 만끽할 수 있는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보호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밀양의 폭염 속에서 발견한 이 차가운 낙원은 올여름 가장 강렬하고도 시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정선 민둥산 돌리네, 세계가 반한 '디자인 미학'

최근 자연의 아름다움에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을 더하며 세계적인 관광지로 도약 중이다. 특히 강원디자인진흥원과 정선군이 협력해 추진한 ‘민둥산 장소 브랜딩 및 명소화 사업’이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사업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이번 수상은 공공디자인을 통해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우수 사례를 발굴하는 정부 시상의 결과다. 정선군과 진흥원은 지난 2024년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민둥산이 가진 고유한 자연 자산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3년에 걸쳐 단계적인 고도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단순히 시설을 보수하는 차원을 넘어 브랜드 구축부터 공간 안내 체계, 콘텐츠 개발까지 통합적인 디자인 전략을 적용한 것이 이번 수상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민둥산은 은빛 억새 물결로 유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돌리네’ 연못과 붉은 토양 등 독특한 지질학적 가치가 숨어 있다. 디자인 팀은 이러한 자연환경을 디자인 자원으로 재해석하여 산의 능선과 자연 패턴을 활용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했다. 이를 통해 공간과 시설물, 콘텐츠 전반에 일관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방문객들에게 민둥산만의 독보적인 장소성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핵심 디자인 언어로 설정된 ‘자연의 겹(Layers of Nature)’은 민둥산의 지형적 특성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랜드마크와 안내 시설물 등에 적용된 이 개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과 동화되는 코르텐강 소재를 활용해 경관과의 조화를 극대화했다. 인공적인 시설물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풍경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한 공공디자인의 미학은 민둥산을 찾는 산행객들에게 정겨운 인사와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사업 추진 이후 민둥산에 대한 온라인 검색량과 외지 방문객 수는 눈에 띄게 증가하며 관광 활성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는 지역의 고유 자원을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통해 경쟁력 있는 관광 자산으로 전환한 지속 가능한 브랜딩 모델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산행 코스를 넘어 산촌의 라이프스타일과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민둥산은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관광객들의 시선까지 사로잡고 있다.진재한 강원디자인진흥원장은 이번 수상이 정선군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역 자원의 가치를 한 단계 격상시킨 성공적 모델임을 강조했다. 향후 강원특별자치도 내의 다양한 자연 및 문화 자원에 수준 높은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접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도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디자인의 힘으로 재탄생한 민둥산의 은빛 억새와 푸른 돌리네는 올가을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