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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민둥산 돌리네, 세계가 반한 '디자인 미학'

 늦여름의 열기가 물러가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이 새로운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 가을을 상징하는 5대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민둥산은 최근 자연의 아름다움에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을 더하며 세계적인 관광지로 도약 중이다. 특히 강원디자인진흥원과 정선군이 협력해 추진한 ‘민둥산 장소 브랜딩 및 명소화 사업’이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사업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수상은 공공디자인을 통해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우수 사례를 발굴하는 정부 시상의 결과다. 정선군과 진흥원은 지난 2024년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민둥산이 가진 고유한 자연 자산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3년에 걸쳐 단계적인 고도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단순히 시설을 보수하는 차원을 넘어 브랜드 구축부터 공간 안내 체계, 콘텐츠 개발까지 통합적인 디자인 전략을 적용한 것이 이번 수상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민둥산은 은빛 억새 물결로 유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돌리네’ 연못과 붉은 토양 등 독특한 지질학적 가치가 숨어 있다. 디자인 팀은 이러한 자연환경을 디자인 자원으로 재해석하여 산의 능선과 자연 패턴을 활용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했다. 이를 통해 공간과 시설물, 콘텐츠 전반에 일관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방문객들에게 민둥산만의 독보적인 장소성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핵심 디자인 언어로 설정된 ‘자연의 겹(Layers of Nature)’은 민둥산의 지형적 특성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랜드마크와 안내 시설물 등에 적용된 이 개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과 동화되는 코르텐강 소재를 활용해 경관과의 조화를 극대화했다. 인공적인 시설물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풍경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한 공공디자인의 미학은 민둥산을 찾는 산행객들에게 정겨운 인사와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사업 추진 이후 민둥산에 대한 온라인 검색량과 외지 방문객 수는 눈에 띄게 증가하며 관광 활성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는 지역의 고유 자원을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통해 경쟁력 있는 관광 자산으로 전환한 지속 가능한 브랜딩 모델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산행 코스를 넘어 산촌의 라이프스타일과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민둥산은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관광객들의 시선까지 사로잡고 있다.

 

진재한 강원디자인진흥원장은 이번 수상이 정선군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역 자원의 가치를 한 단계 격상시킨 성공적 모델임을 강조했다. 향후 강원특별자치도 내의 다양한 자연 및 문화 자원에 수준 높은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접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도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디자인의 힘으로 재탄생한 민둥산의 은빛 억새와 푸른 돌리네는 올가을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