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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평받던 페라리 전기차, 564억에 낙찰

 디자인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페라리의 첫 순수 전기차 '루체(Luce)'가 경매 시장에서 유례없는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자선 경매에서 특별 제작된 '루체 섀시 0' 모델이 무려 4,000만 달러, 우리 돈 약 564억 원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당초 예상되었던 경매가보다 36배나 높은 수치로, 전 세계 신차 경매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을 경신한 대기록이다.

 

이탈리아어로 '빛'을 의미하는 루체는 지난 5월 처음 공개될 당시만 해도 페라리 골수 팬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날렵하고 각진 선을 강조하던 전통적인 슈퍼카 디자인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둥근 외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페라리답지 않다"는 실망 섞인 반응은 시장에도 즉각 반영되어, 공개 직후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에서 페라리의 주가가 8% 이상 폭락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 경매 결과는 시장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이번에 최고가를 기록한 차량은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맞춤 제작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모델이다. 진주 영롱함을 담은 반광택 특수 도료가 입혀져,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차체가 녹색에서 보라색으로 오묘하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페라리는 루체가 기존의 고객층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수요를 겨냥한 혁신적인 시도임을 강조해 왔으며, 이번 낙찰가는 그 전략적 가치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정받았음을 시사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루체는 페라리의 첨단 공학이 집약된 결정체다. 네 개의 바퀴에 각각 독립적인 전기 모터를 장착해 폭발적인 주행 성능을 구현했으며, 일반 판매 모델의 가격만 해도 약 9억 원에 달하는 초고가 사양을 자랑한다. 페라리는 전기차 시대에도 브랜드 특유의 강력한 퍼포먼스와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번 루체 프로젝트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번 경매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 전액은 페라리 재단을 거쳐 교육 사업에 기부될 예정이다. 단순한 차량 판매를 넘어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명분까지 더해지면서, 루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급격히 긍정적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할 수 있으나, 페라리라는 브랜드가 가진 상징성과 전기차로의 성공적인 전환 가능성은 이번 경매를 통해 확실히 각인되었다.

 

경매를 마친 특별 제작 차량은 이탈리아 본사로 돌아가 장인들의 손길을 거치는 최종 마감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페라리는 내년 1분기 중 낙찰자에게 차량을 인도할 예정이며, 일반 모델 역시 올해 4분기부터 본격적인 고객 인도를 시작한다. 디자인 혹평을 기록적인 낙찰가로 잠재운 루체가 도로 위에서 어떤 성능을 보여줄지,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의 시선이 이탈리아 마라넬로로 향하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