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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B의 비밀, 김준호 자숙 때 김대희가 한 일

 개그계의 전설적인 콤비 김준호와 김대희가 2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져온 끈끈한 형제애를 공개하며 안방극장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19일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두 사람은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함께 극복해낸 비화를 털어놓았다. 특히 김준호는 과거 자신이 여러 사건과 사고에 휘말려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당시, 김대희가 보여준 믿기 힘든 의리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김준호가 모든 활동을 접고 쉬고 있을 때, 김대희는 남겨진 후배들과 스태프들을 챙기기 위해 새로운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했다. 놀라운 점은 회사 이름인 'JDB'가 두 사람의 이름인 준호(Junho)와 대희(Daehee)의 앞 글자를 딴 브라더스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대희는 김준호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무실 안에 그의 전용 자리까지 미리 마련해 두었다. 동료의 몰락을 지켜보는 대신 그의 재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터전을 닦아 놓은 셈이다.

 


김준호는 김대희가 본업인 연기자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후배들과 회사를 위해 대표직을 맡아 사방으로 영업을 다녔던 모습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은 자숙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을 때, 맏형인 김대희가 대신 짐을 짊어지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점이 가장 고마웠다고 고백했다. 이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선 가족 이상의 유대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함께 짊어졌기 때문이다. 김준호가 공동 대표로 재직했던 코코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15년 다른 공동 대표의 횡령과 잠적으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며 결국 폐업의 길을 걸었다. 소속 연예인들이 출연료조차 받지 못하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 김대희는 회피하는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후배들의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미지급된 출연료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김대희의 소속사는 그가 김준호와 뜻을 같이하여 후배 연기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개그계 선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책임감이자 동료애의 표본으로 남았다. 김준호는 자신이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준 김대희의 존재가 있었기에 다시 대중 앞에 설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며, 27년 콤비의 힘은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방송 내내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자아내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서로를 향한 존중과 희생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위기의 순간에 등을 돌리는 대신 손을 내밀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김대희의 리더십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동료애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27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흐른 세월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메워주며 쌓아 올린 견고한 신뢰의 역사였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