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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20주년 축제, 떠난 멤버들의 씁쓸한 근황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 빅뱅이 데뷔 2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2006년 8월 19일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들은 숱한 논란과 멤버 변화를 겪은 끝에 지드래곤, 태양, 대성 3인 체제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19일 오후 6시 공개된 새 디지털 싱글 'BiiiG(빅)'은 4년이 넘는 공백 무색하게 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신곡은 단순한 기념곡을 넘어, 풍파를 견뎌낸 남은 멤버들이 팬들에게 전하는 약속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다.

 

빅뱅의 20주년은 음원 발표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오프라인 축제로 확장되고 있다. 오는 21일부터 사흘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월드투어 'XX : COSMOS'는 전 세계 19개 도시를 순회하는 대장정의 서막이다. 한강공원에서는 팬들을 위한 컬래버레이션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팀의 역사를 조망하는 대형 미디어 전시까지 마련되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K-POP의 정점을 지켜온 이들의 저력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축제의 화려함 뒤편에는 팀을 떠난 전 멤버들의 씁쓸한 근황이 교차하며 팬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가장 큰 충격을 안긴 것은 지난해 스스로 탈퇴를 선언했던 탑의 행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팬 계정의 영상을 공유하며, 아이디에 포함된 'BIGBANG'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해 업로드했다. 남은 세 멤버가 탑의 솔로 활동을 공개적으로 응원하며 의리를 과시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에 오랜 팬들은 깊은 서운함을 드러내고 있다.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난 승리의 처지 역시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2019년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며 연예계를 은퇴했던 그는 최근 지인의 SNS를 통해 근황이 공개됐다. 하지만 해당 게시물에는 그의 이름과 과거 사건을 빗댄 조롱 섞인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한때 화려한 조명 아래서 함께 20주년을 꿈꿨을 동료였으나, 이제는 대중의 비난과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그의 현실은 팀의 영광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처럼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다섯 남자의 현재는 극과 극의 온도 차를 보여준다. 지드래곤과 태양, 대성은 굳건히 팀을 지키며 K-POP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반면, 한 명은 스스로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씻을 수 없는 과오의 굴레에 갇혀 있다. 같은 날 데뷔해 같은 꿈을 꾸었던 이들이 20년 뒤 서로 다른 좌표에 서 있게 된 현실은 연예계의 냉혹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빅뱅의 20주년 활동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3인조로 재편된 빅뱅이 선보일 새로운 음악적 세계관과 전 세계를 누빌 월드투어는 이들이 왜 여전히 '빅뱅'인지를 증명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선택한 남은 멤버들의 행보에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비록 완전한 형태의 축제는 아닐지라도, 이들이 써 내려가는 20년의 기록은 그 자체로 K-POP 역사에 굵직한 획을 긋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