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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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치도 감탄, 이알라 향한 필리핀 팬들의 열정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여자 프로테니스 무대가 필리핀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필리핀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알렉산드라 이알라가 캐나다 오픈 16강전에서 멈춰 섰지만, 그를 향한 팬들의 지지는 승패를 초월한 감동을 선사했다. 세계 20위까지 치솟은 이알라는 스위스의 강호 벨린다 벤치치를 상대로 분전했으나 세트 스코어 0대 2로 무릎을 꿇으며 최근 이어온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경기는 일방적인 점수 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의 분위기는 마치 이알라의 홈 경기장을 방불케 했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수많은 필리핀계 이민자들과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이들은 경기 내내 필리핀 국기를 흔들며 열렬한 함성을 보냈다. 이러한 열기는 대회 운영 전반에도 영향을 미쳐, 이알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입장권이 순식간에 매진되는가 하면 경기장 내 음식점들이 필리핀 관중을 겨냥한 특별 메뉴를 선보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승리를 거둔 벨린다 벤치치조차 경기 직후 코트 위에서 상대 선수를 향한 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벤치치는 인터뷰를 통해 관중석의 대다수가 이알라를 응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런 뜨거운 열기 속에서 경기할 수 있었던 경험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적장의 이례적인 찬사는 이알라가 단순히 실력 있는 유망주를 넘어 한 국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이알라는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최근 보여준 행보를 통해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을 입증했다. 앞서 열린 워싱턴 대회에서 그랜드슬램 챔피언 출신인 오사카 나오미와 세계적인 강호 엘리나 스비톨리나를 연파하며 생애 첫 투어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 있다. 필리핀 테니스 역사상 유례없는 7연승 기록을 세우며 단숨에 세계 랭킹을 끌어올린 그녀의 성장은 전통적인 테니스 변방이었던 동남아시아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대회를 마친 이알라는 토론토에서 느낀 팬들의 사랑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벅찼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진 토론토라는 도시에서 필리핀 커뮤니티가 보여준 결집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비록 연승 가도는 멈췄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팬들의 지지는 향후 이어질 북미 하드코트 시리즈와 US 오픈을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현지에서도 이알라의 경기가 열리는 시간마다 전국적인 시청 열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차로 인해 새벽 시간에 경기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실시간 중계를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는 팬들의 모습은 과거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전성기를 연상케 한다. 테니스라는 종목을 통해 필리핀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준 이알라는 이제 다음 목표를 향해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며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