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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에 핀 디저트 예술…피에르 에르메 첫 카페 오픈

 프랑스 파티세리의 거장 피에르 에르메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국내 최초의 카페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이며 미식 예술의 정수를 공개했다. 이번 오픈은 단순한 디저트 판매를 넘어 프랑스식 삶의 방식인 '아르 드 비브르'를 공간 전체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프리뷰 행사에서는 브랜드의 철학인 창의성과 현대적 감성이 조화를 이룬 미식 공간의 실체가 드러나며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피에르 에르메 파리가 추구하는 미학은 '인피니망'과 '시그니처'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로 요약된다. 인피니망은 바닐라나 초콜릿 등 단일 재료의 풍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탐구의 결과물이며, 시그니처는 서로 이질적인 재료를 대담하게 섞어 새로운 미각의 균형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이러한 철학이 담긴 마카롱과 타르트, 마들렌 등 예술 작품에 가까운 디저트들이 쇼케이스를 가득 채우며 고객들을 맞이한다.

 


대표 메뉴인 '이스파한' 시리즈는 피에르 에르메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플레이버다. 장미의 우아한 향과 라즈베리의 산미, 그리고 리치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이 조합은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의 정체성이다. 또한 세 가지 산지의 바닐라를 조합한 타르트와 밀크초콜릿에 패션프루트를 더한 모가도르 마카롱 등은 맛의 건축가라는 명성에 걸맞은 정교한 설계를 자랑한다.

 

품질 관리에 있어서는 타협 없는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매장을 총괄하는 장구현 셰프는 매일 완성된 제품의 사진을 프랑스 본사에 보내 메종의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받는 절차를 거친다. 특히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고려해 유제품 레시피로 재해석한 소프트아이스크림 등 현지화된 메뉴조차 본사의 까다로운 품질 점검을 통과한 뒤에야 고객의 식탁에 오를 수 있다.

 


공간 설계 역시 단순한 카페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중앙의 원형 카운터를 중심으로 흐르는 유연한 동선과 브라스, 월넛 우드, 세라믹 타일 등 고급스러운 소재의 조화는 '컨템포러리 프렌치 파티세리 살롱'이라는 콘셉트를 명확히 보여준다. 기존 백화점 매장이 신속한 구매에 집중했다면, 이곳은 고객이 머무르며 디저트와 음료, 그리고 공간이 주는 분위기까지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기획되었다.

 

호텔아이파크가 운영을 맡은 피에르 에르메 파리는 이번 63빌딩 플래그십 스토어를 기점으로 국내 사업의 영역을 대폭 확장할 계획이다. 주요 백화점 팝업과 매장 전개를 통해 쌓아온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이제는 예술과 미각이 공명하는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퐁피두센터 서울과 나란히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서울의 미식 지형도를 바꾸는 새로운 럭셔리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기세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