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생활문화

포스트 단색화 거장, 물로 그린 사계절의 완성

 캔버스 위에는 붓이 지나간 자국도, 색과 색을 가르는 날카로운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구름이 흩어지거나 오로라가 스며드는 듯한 몽환적인 색의 흐름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물에 풀린 안료들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서서히 가라앉으며 만들어낸 부드러운 깊이감은 관람객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아둔다. 조현화랑은 김택상 작가의 개인전 ‘그대로(As It Is)’를 서울과 부산의 세 곳 전시장에서 동시에 개최하며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김택상은 지난 30여 년 동안 물과 안료의 상호작용을 통해 색의 번짐과 침전, 그리고 겹침의 미학을 탐구해온 작가다. 그의 작업 방식은 수행에 가깝다. 바닥에 눕힌 캔버스 위에 극소량의 안료를 섞은 물을 붓고, 입자가 자연스럽게 가라앉아 마르기를 기다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햇빛과 바람, 시간이라는 자연의 요소가 화면 형성에 직접 개입하며, 안료마다 다른 침전 속도는 작가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우연의 결과를 빚어낸다.

 


작가는 완성된 형태를 미리 설계하기보다 물과 안료가 스스로 만들어낼 풍경을 묵묵히 기다리는 태도를 고수한다. 지난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작업 과정에 대한 설렘을 드러내며 이를 ‘시절 인연’에 비유했다. 작가의 인위적인 통제를 최소화하고, 어느 순간 ‘이 정도면 됐다’는 직관이 찾아올 때 비로소 붓을 놓는 그의 방식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동양적 예술관과 맞닿아 있다.

 

절제된 화면 구성과 반복적인 행위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포스트 단색화’의 주요 흐름으로 평가받는다. 김택상은 자신의 그림을 맑고 엷은 그림이라는 뜻의 ‘담화(淡畵)’라고 명명한다. 강렬한 색채 대비나 화려한 기교 대신, 물과 안료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농담의 차이를 포착한다. 이러한 기다림의 미학은 작가 개인의 개입을 줄이고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수용하는 그의 철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최초로 공개되는 ‘아이스 블로섬(Ice Blossom)’ 연작이다. 그간 그의 작업은 물이 얼지 않는 계절에 국한되어 왔으나, 이번 신작은 겨울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예술적 동력으로 끌어들였다. 영하의 기온에서 물과 안료가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남긴 결정의 흔적들은 이전의 작업과는 또 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이로써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의 시간성을 모두 담아내며 그의 ‘물 회화’는 하나의 완결된 주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전시장에는 10m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회화와 함께 영상, 설치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며 김택상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전시 제목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색채의 층위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물과 색이 캔버스 위에서 유영하며 만들어낸 숭고한 흔적들은 오는 11월 8일까지 서울과 부산의 조현화랑에서 만나볼 수 있다.

 

몽블랑 보러 갔다가 반한 프랑스 소도시 “샤모니”

지만 직접 샤모니를 여행해보면 거대한 산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과 온천, 빙하까지 이곳을 즐기는 방법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해 9월 찾은 샤모니는 맑고 쾌청한 날씨가 이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도 알프스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산뿐만이 아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샤모니는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기 좋았다. 알프스 특유의 아기자기한 건물 사이로 카페와 레스토랑, 아웃도어 숍이 이어지고, 골목을 조금만 걸어도 건물 사이로 거대한 산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마을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카페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고, 눈에 들어오는 예쁜 건물을 사진으로 남기고, 골목 끝에서 산이 보이면 걸음을 멈춰 바라보는 식이다. 유명 관광지를 빠짐없이 찾아가는 여행과는 또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샤모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코스는 에귀 뒤 미디다. 샤모니 시내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약 20분 만에 해발 3,842m까지 올라갈 수 있다. 직접 산을 오르는 등반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등반 경험이 없어도 알프스의 높은 곳에 올라가 볼 수 있다.정상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몽블랑이다. 주변으로 높은 봉우리와 빙하가 이어지고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방향의 알프스까지 바라볼 수 있으며, 유리 전망시설인 ‘스텝 인 더 보이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직접 여행해보면 특별한 시설보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산 자체가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빙하를 보고 싶다면 몽탕베르도 좋은 선택이다.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면 메르 드 글라스를 만날 수 있다. 톱니바퀴 산악열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과정부터 색다르고, 도착한 뒤에는 거대한 빙하와 주변의 알프스 봉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조금 더 걷고 싶다면 락 블랑도 있다. 에귀 루즈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산정호수로, 몽블랑 산군을 배경으로 알프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하이킹 코스다. 긴 하이킹이 부담스럽다면 브레방이나 플레제르처럼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는 전망 포인트를 선택해도 된다. 특히 브레방에서는 몽블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샤모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따로 있다. 바로 QC떼르메 샤모니 몽블랑이다. 산을 보고 걷는 것만 생각하고 떠났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산을 바라보며 쉬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QC떼르메에서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알프스를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야외 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눈앞에는 거대한 산이 펼쳐져 있고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있는 경험은 산 위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총 일주일 동안 샤모니에 머무는 동안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도 두 번 방문할 만큼 만족스러웠다.샤모니에서는 의외의 음식도 만날 수 있다. 쿨캣의 김치 핫도그가 그중 하나다. 알프스 최고봉을 보기 위해 프랑스까지 찾아가 김치 핫도그를 먹는 것이 조금 뜻밖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익숙한 김치 맛을 만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반갑다. 현지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샤모니 여행에서 유명한 명소만 따라다닐 필요는 없다. 일정 중간에 아무 계획 없이 마을을 걷는 시간을 넣어도 좋다. 어느 길을 걷든 산이 보이고, 카페에 앉아 쉬는 순간에도 알프스가 배경이 된다.지난해 9월 샤모니가 좋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좋은 날씨 덕분에 높은 곳에서 몽블랑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산과 마을을 오가며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특별한 명소를 찾았던 순간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었다. 예쁜 마을을 천천히 걷고, 눈앞의 산을 바라보고, 잠시 쉬었던 평범한 시간까지 모두 여행의 한 부분으로 남았다.샤모니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몽블랑을 바라볼 수도 있고, 산악열차를 타고 빙하를 만날 수도 있다. 체력이 된다면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고, 반대로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누려도 된다. 하루의 마지막에는 온천에 몸을 담근 채 다시 알프스를 바라볼 수도 있다.알프스 최고봉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걷고, 쉬고, 온천을 즐기는 곳. 지난해 9월 직접 만난 샤모니는 산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아쉬운, 다양한 매력을 품은 소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