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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 보러 제주 가요" 지브리전 흥행 돌풍

 제주국제공항 도착장을 나서자마자 마주하는 인파의 시선은 한곳으로 쏠려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옮겨놓은 ‘도토리숲’ 팝업 스토어가 여행객들을 반기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 구좌읍 송당리 동화마을에 들어선 ‘스튜디오 지브리 전시관’은 개관 한 달 만에 도민들조차 휴가철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할 만큼 뜨거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도쿄와 나고야의 지브리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고품격 전시가 제주 자연과 만나 새로운 문화 지형을 만들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제주 동화마을은 12만㎡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에 제주의 팽나무와 자연석을 배치한 개방형 공원이다. 인위적인 테마파크라기보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속 숲의 정령인 코다마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원시적 자연미를 자랑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하얀색 대형 전시관은 약 3,100㎡ 규모로,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가오나시 조형물이 관람객을 압도하며 지브리의 세계로 안내한다.

 


전시관 내부는 총 17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들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이웃집 토토로’ 구역에서는 숲속에 누워 있는 토토로와 그 배 위에 엎드린 메이의 포근한 질감을 실물 크기로 감상할 수 있다.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작품 속 배경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몰입형 연출이 돋보인다. 감독의 오리지널 원화와 콘티 등 전문적인 자료들도 함께 전시되어 예술적 깊이를 더했다.

 

특히 이번 제주의 전시는 일본 현지에서도 볼 수 없는 ‘세계 최초’ 조형물들을 대거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했다. 5m 높이로 공중에 떠 있는 ‘천공의 성 라퓨타’와 실제로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지브리 팬들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신들의 온천장 골목은 조명을 활용해 낮과 밤의 변화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은 단연 ‘네코버스’다. 행선지가 ‘제주’로 표시된 이 거대한 고양이 버스는 관람객이 직접 내부에 탑승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버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찍는 사진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전시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마녀배달부 키키’를 테마로 한 코리코 카페와 수국길이 이어져, 관람의 여운을 제주의 자연 속에서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지브리 전시는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성인들에게는 잊고 지냈던 동심을 되찾아주는 세대 공감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제주라는 섬이 주는 평온함과 지브리의 판타지가 결합하여 관람객들에게 깊은 휴식을 제공한다. 제주의 푸른 숲과 지브리의 동화적 상상력이 만난 이번 특별전은 단순한 관광 콘텐츠를 넘어,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여름날의 기록을 남기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