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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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이 지킨 ITF, 북한 메달 밭 된 몽골 대회

 최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막을 내린 제11회 국제태권도연맹(ITF)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이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 걸린 총 106개의 금메달 중 무려 67개를 휩쓸며 전체의 63%를 독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은메달 18개와 동메달 4개를 포함해 총 89개의 메달을 획득한 북한은 질적인 면에서 타 국가들을 압도하며 ITF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대회 개최국인 몽골은 금메달 16개를 따내며 종합 2위에 올랐으나, 은메달 46개와 동메달 75개를 보태 전체 메달 수에서는 137개로 북한을 앞질렀다. 3위는 금메달 12개를 획득한 러시아가 차지했으며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퇴출 위기에 몰린 러시아가 아시아권 대회임에도 초청되어 메달을 챙긴 점은 ITF의 독자적인 노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올림픽 태권도는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 방식이지만, 북한이 주도하는 ITF 역시 국제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1966년 서울에서 창설된 ITF는 창립자 최홍희 씨의 망명과 북한 사범 파견을 거치며 점차 북한 중심의 단체로 변모했다. 이후 한국 주도의 WTF(현 WT)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주류가 되었으나, ITF는 구공산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두 연맹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발 기술 위주에 호구를 착용하는 WT와 달리, ITF는 손 기술의 비중이 높으며 선수들이 글러브를 착용하고 대련을 펼친다. 실전 격투기에 가까운 역동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4월 타계한 장웅 전 IOC 위원은 생전 ITF 총재를 지내며 남북 체육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중국이 대회에 불참하는 등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은 성인부뿐만 아니라 연령별 대회를 통합 개최하여 저변 확대를 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이 참가해 메달을 나누어 가졌지만, 북한의 독주 체제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북한은 폐쇄적인 국제 환경 속에서도 ITF 태권도를 체제 선전과 스포츠 외교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며,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절대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ITF는 이번 대회의 성공을 발판 삼아 오는 9월 카자흐스탄에서 월드컵을 개최할 예정이다. 올림픽 중심의 주류 스포츠계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을 잇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북한의 압도적인 메달 사냥으로 확인된 ITF 태권도의 현주소는 남북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이질적인 문화적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