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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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없어서 열었다?” 동의 없이 온 중개사, 죄 될까

집을 팔거나 전·월세 매물로 내놓은 뒤 현관 비밀번호를 공인중개사에게 알려줘야 하는지를 두고 거주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집을 자주 보여줘야 거래가 빨라지는 것은 맞지만, 비밀번호가 여러 중개인에게 공유되면 사생활 침해나 무단 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일부 거주자들은 거래 기간에만 사용할 임시 비밀번호를 만들거나, 본인이 집에 있는 시간에만 방문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 “방문 전 반드시 확인 전화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중개업소에서는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하거나 방문 시간을 제한하면 매매가 늦어진다며 사실상 거주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우려는 실제 사건으로도 이어졌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모 씨는 최근 공인중개사들이 자신의 허락 없이 집 안에 들어오거나 들어오려 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박 씨는 집을 매물로 내놓은 뒤 여러 부동산과 연락을 주고받던 과정에서 잇따라 무단 출입 피해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박 씨에 따르면 그는 여행을 떠난 기간 한 부동산의 A 공인중개사에게 집을 보여주기 위해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A 중개사는 손님과 함께 집을 둘러본 뒤 돌아갔다. 그러나 며칠 뒤 같은 부동산 소속 B 중개사가 박 씨에게 별도 허락을 받지 않은 채 해당 비밀번호를 이용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시 박 씨는 집 안에서 자고 있었다. 피부 발진 때문에 약을 바르고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던 그는 갑자기 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 씨는 “비밀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A 중개사였지 B 중개사가 아니었다”며 “내가 집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들어온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B 중개사는 방문 전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어 집이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밀번호는 같은 사무실의 A 중개사에게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박 씨가 강하게 항의하자 A, B 중개사는 뒤늦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비슷한 상황은 다른 부동산에서도 반복됐다. 박 씨가 집에 없을 때 방문했던 C 공인중개사가 같은 사무실의 D 중개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했고, D 중개사가 박 씨의 동의 없이 집을 찾아와 문을 열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 박 씨는 앞선 일을 겪은 뒤 비밀번호를 바꿔둔 상태였다.

 

D 중개사는 바뀌기 전 비밀번호를 여러 차례 입력했고, 결국 도어락 경보음이 울렸다. 집 안에 있던 박 씨는 놀라 잠에서 깼다. 항의하러 나간 박 씨에게 D 중개사는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어서 열어봤다”, “답장을 기다리면 집을 언제 보여주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부동산에서 보내는 연락이 많아 문자를 바로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답장이 없으면 방문하지 않는 것이 상식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결국 해당 중개업자들을 주거침입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인중개사가 거주자의 명확한 동의 없이 집 안에 들어가는 행위는 주거침입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밀번호를 한 차례 제공받았더라도, 이는 특정한 방문 목적과 시간에 한정된 것이지 자유 출입권을 준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형법 제319조는 사람의 주거에 침입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실제로 공인중개사가 세입자 동의 없이 고객에게 아파트를 보여주기 위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사건에서 법원이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재판부는 거주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동의 없이 비밀번호를 입력해 들어간 행위가 주거의 평온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더라도 처벌 가능성은 남아 있다. D 중개사처럼 동의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며 출입을 시도한 경우 주거침입미수죄가 문제 될 수 있다. 주거침입죄의 미수범 역시 형법상 처벌 대상이다.

 

또 공인중개사가 거주자에게 받은 현관 비밀번호를 다른 중개인에게 넘기는 행위는 공인중개사법 위반 소지도 있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관 비밀번호는 거주자의 주거 안전과 직결되는 정보인 만큼 업무상 비밀로 볼 여지가 크다.

전문가들은 매물을 내놓더라도 거주자가 원하지 않는 시간에 집을 보여줄 의무는 없다고 조언한다. 방문은 반드시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며, 문자만 보내고 답이 없다는 이유로 문을 여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거래 편의보다 우선되는 것은 거주자의 주거 안전과 사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관행처럼 이뤄져 온 비밀번호 공유 문화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매물을 빨리 팔기 위한 편의가 거주자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중개업계의 출입 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