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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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뺏는 정치인 방문, 소방 노조 '폭발'

 기록적인 가뭄과 유례없는 폭우가 잇따라 덮친 경남 지역에서 재난 복구에 전념해야 할 소방관들이 정치인 방문 의전에 강제 동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현장 대원들은 인명 구조와 피해 수습에 투입되어야 할 소중한 소방력이 본래 목적과 무관한 행정 편의적 업무에 낭비되고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재난 대응의 우선순위가 국민의 생명이 아닌 고위직 인사의 방문에 맞춰져 있다는 비판을 자아내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경남소방지부에 따르면, 거제 등 극심한 수해를 입은 지역에서 복구 작업 중이던 대원들이 방문객을 위한 천막을 설치하고 상황판을 준비하는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현장 상황을 확인하러 온 기관장이나 정치인의 방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대원들이 본연의 임무를 중단하고 의전에 매달리는 순간 재난 대응의 골든타임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여름 경남 소방관들은 극한의 기상 변화 속에서 사투를 벌여왔다. 이달 초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국가소방동원령이 내려지면서 전국에서 모인 인력들이 농업용수 공급에 매달렸다. 닷새 동안 수천 차례 출동해 3만 톤이 넘는 물을 공급하며 가뭄 해소에 힘을 보탰으나, 동원령이 해제되자마자 이번에는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한 기록적인 폭우가 거제와 통영을 휩쓸었다.

 

폭우로 인한 피해는 처참했다. 거제 옥포동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잇따랐고, 수천 건의 호우 관련 신고가 빗발치며 소방당국은 다시 한번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100명이 넘는 주민을 구조하고 침수 지역 배수 작업과 토사 제거 등 쉴 틈 없는 복구 활동이 이어지는 와중에, 정치인 방문을 위한 의전 준비 지시는 현장 대원들의 사기를 꺾는 결정타가 되었다는 평가다.

 


소방 노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전 업무 동원에 대한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하고 책임 있는 지시 체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재난 대응과 무관한 업무 지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제도적 기준을 마련하고, 부당한 의전 지시를 거부한 대원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방지책을 세울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현장의 목소리가 외면받는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다.

 

재난 현장에서의 소방력은 오직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우선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행정을 위해 구조 인력을 차출하는 구태가 반복되면서 공직 사회 내부의 불만은 임계점에 도달한 모양새다. 극심한 기상 재해 속에서 헌신하는 소방관들이 더 이상 본업과 상관없는 의전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