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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 예산 시대 연다는 정부…재정판 액셀 밟는다

정부가 2030년 국가 재정지출을 1,000조 원 이상으로 늘리는 중기 재정 청사진을 제시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세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과 전략산업, 청년·지역 지원 등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반도체 경기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 번 확대된 지출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획예산처는 1일 2027년 예산안과 함께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 총지출은 내년 820조9,000억 원에서 2028년 894조6,000억 원, 2029년 957조4,000억 원으로 늘어난 뒤 2030년에는 1,005조2,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지출 증가율은 8.4%로 잡혔다. 이는 지난해 제시했던 중기 계획상 연평균 증가율 5.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당시 정부가 예상한 2029년 지출 규모는 834조7,000억 원이었지만, 이번 계획에서는 같은 해 지출 전망이 120조 원 이상 불어났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 운용에 나설 수 있다고 보는 배경에는 세입 증가 전망이 있다. 기획처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기업 실적 개선에 힘입어 재정 수입이 2030년까지 연평균 9.9%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도 2%대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 지출을 늘리더라도 재정 건전성은 오히려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30년 49%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채무 규모는 1,734조1,000억 원으로 제시됐다. 또 실질적인 나라 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올해 GDP 대비 3.9%에서 중기적으로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되 재정준칙을 복원해 건전성 관리도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예산은 미래 성장 기반을 만드는 데 우선 투입된다.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와 인공지능, 첨단 전략산업, 핵심 인프라 등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구조적 저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성장 동력 확보 수단으로 쓰겠다는 취지다. 동시에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 청년과 소상공인, 농어민, 지역 지원 등 양극화 완화 정책에도 재원이 배분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저성장 국면에서 현재의 회복 흐름을 잠재성장률 반등으로 이어가야 한다”며 “성장과 재정 건전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인 만큼, 현재의 수출 호조를 장기 세입 증가의 근거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불과 1년 전 정부가 2029년 국가채무비율을 58% 수준으로 예상했다가 이번에는 2030년 49%로 제시한 점도 전망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면 세입은 예상보다 크게 줄 수 있지만, 한 번 늘어난 지출은 쉽게 줄이기 어렵다”며 “지금의 계획은 상당히 낙관적인 가정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화정책과의 엇박자 논란도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와 유동성 관리를 위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규모 확장 재정을 펼치면 정책 방향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고,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질 경우 정책 신뢰와 시장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미래산업 인프라 투자는 중장기적으로 공급 능력을 높여 물가 안정 목표와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초과 세수를 이 기금에 적립해 청년, 성장동력, 지역, 재정 안정 등 4대 분야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세입이 부족할 때를 대비한 일종의 재정 완충 장치로도 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회 승인 없이 기금 지출 예산을 최대 30%까지 늘릴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쌈짓돈’ 논란이 불거졌다.

 

기금 내 사업지출 규모가 45조4,000억 원이라면, 이 중 30%인 13조6,200억 원가량을 정부 판단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은 “추가경정예산은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기금 변경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청년이나 지역 사업 등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정이 쓰일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처는 기금 운용도 법령과 국회 심의 절차 안에서 이뤄진다는 입장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미래대응기금 역시 다른 기금처럼 정해진 범위 안에서 계획을 변경하고 국회 심의도 받는다”며 “법령이 허용한 범위를 넘는 지출이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