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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2000만 원·혼인 100만 원…내년 예산 ‘현금 처방’

내년 예산안의 무게중심은 저출생 대응과 청년·지역 지원으로 옮겨갔다. 정부는 아이를 낳은 가정에 최대 2000만 원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혼인신고를 한 부부에게는 100만 원을 주기로 했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 물량은 역대 최대 규모로 늘리고, 지방국립대 신입생 등록금은 전액 면제한다.

 

기획예산처는 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7년 정부예산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결혼과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혼인·출산·양육을 묶은 지원책을 내놨다. 내년부터 혼인신고를 한 부부는 100만 원의 혼인지원금을 받는다. 기존에는 혼인신고 시 1인당 50만 원씩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저소득층은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정부는 이를 현금성 재정지원으로 바꿔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출산 가정에는 자녀 수와 여건에 따라 1000만~2000만 원의 출산지원금이 지급된다. 지원금은 한 번에 주지 않고 분기별로 나눠 연 4회 지급한다. 다만 이번 출산지원금은 기존 첫만남이용권과 부모급여 등을 대체하는 방식이다. 새 지원책으로 포장됐지만 기존 제도를 통합·개편한 성격이 강해 실제 추가 지원 규모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수당은 아동기본수당으로 확대 개편된다. 현재 월 10만~13만 원 수준인 수당은 내년 7월부터 월 20만 원으로 오른다. 지방우대지역에 사는 아동에게는 월 30만 원이 지급된다. 0~1세 영아를 가정에서 양육하는 경우에는 월 30만 원이 추가로 지원된다. 정부는 양육 초기 비용 부담을 낮추고 지역 간 출산·양육 여건 격차를 줄이겠다는 목표다.

 

자녀의 장기 자산 형성을 돕는 ‘우리아이자립펀드’도 새로 도입된다. 올해 9월 이후 태어난 아이가 대상이다. 정부는 출생 때부터 만 18세까지 부모 소득에 따라 연 최대 120만 원을 지원한다. 부모 납입금과 정부 지원금을 합쳐 매년 200만 원씩 19년 동안 적립하고 연 6% 수익률을 낼 경우 약 7000만 원의 자산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전기차 보급 예산도 확대된다. 정부는 전기차 구매보조금 단가는 대체로 유지하되 지원 대상 물량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승용 전기차 보조금은 올해와 같은 300만 원으로 유지된다. 소형 전기화물차 보조금은 1000만 원에서 800만 원으로 줄지만, 전체 지원 물량은 역대 최대인 43만 대로 확대된다.

 

지역 대학과 청년 지원도 예산안의 주요 축이다. 정부는 30개 지방국립대 신입생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지역인재장학금 예산은 800억 원에서 1150억 원으로 늘려 특성화사립대 우수학생 1만 명을 지원한다. 대학생이 재학 중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인턴 학기’도 도입한다.

 

미취업 청년을 위한 금융지원도 마련됐다. 정부는 청년에게 최대 2000만 원까지 대출해 주는 ‘청년기회자금’을 공급한다. 취업하거나 창업하기 전까지는 이자를 받지 않고, 이후에는 연 2~4%의 낮은 금리로 갚도록 할 계획이다.

 

공무원 보수도 대폭 오른다. 내년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3.9%로 정해졌다. 이는 16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이에 따라 9급 공무원 초임 월급은 300만 원 안팎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정부는 민간과의 임금 격차, 하위직 공무원의 처우 문제를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도 확대된다. 올해 17개 군에서 시행 중인 사업은 내년 35개 군으로 늘어난다. 관련 예산은 1조1658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한 농어촌 지역의 생활 기반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예산안은 결혼·출산 가정과 청년, 지역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확장적 성격이 뚜렷하다. 다만 출산지원금이 기존 지원제도를 대체하는 구조이고, 현금성 지원이 대거 늘어난 만큼 재정 효과와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