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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빙하 홍수 실종자 3000명 넘어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발생한 빙하 붕괴가 네팔과 중국령 티베트 접경 지역을 대규모 재난으로 몰아넣었다. 불어난 물과 토사가 산악 마을과 공사 현장을 덮치면서 사망자는 797명, 실종자는 3048명으로 늘었다. 각국 구조대는 수력발전소 터널 등에 갇힌 생존자를 찾기 위해 악천후 속에서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30일 현지 매체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네팔 당국은 이번 홍수로 자국 내 사망자가 781명, 실종자가 2502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CCTV는 티베트 지역에서 16명이 숨지고 546명이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두 지역을 합치면 사망·실종 인원은 3800명을 넘어선다.

 

중국 당국은 티베트에서 고립됐던 관광객과 주민 대피에도 나섰다. 현지에서는 관광객 555명과 중국인 주민 499명이 안전 지역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산악 지형 특성상 도로가 끊기고 통신이 불안정한 곳이 많아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네팔의 실종자 명단에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네팔 당국에 따르면 10여 곳의 수력발전소 공사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933명이 연락 두절 상태다. 힌두교 성지로 알려진 카일라스산을 찾은 순례자 등 외국인 592명도 실종자에 포함됐다.

 

구조 작업의 초점은 트리슐리 3A와 3B 수력발전소 일대에 맞춰져 있다. 이곳에는 노동자 100여 명이 갇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네팔군은 트리슐리 3A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통로에 파이프를 삽입한 뒤 굴착을 진행했고, 작은 틈을 통해 내부로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수단 구룽 네팔 내무장관은 “작은 틈으로 공기를 넣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구조대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통로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밤사이 내린 비로 강물이 다시 불어나면서 굴착 지역 일부가 물에 잠겼고, 작업은 여러 차례 지연됐다.

 

중국 구조대도 긴급 대피했다. 홍수로 떠내려온 토사와 암석이 하천 물길을 막으면서 임시 호수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연 댐은 언제든 다시 붕괴할 수 있어 2차 홍수 위험이 크다. 현장 구조대는 추가 산사태와 급류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네팔 정부는 국제사회에 전문 장비와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장관은 재건 비용이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며, 고립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대형 화물 무인기와 탐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시신 확인을 위한 법의학 장비와 시신 보관용 냉동 시설도 요청했다.

 

카날 장관은 물에 잠겼던 시신은 부패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며 신원 확인 작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피해 지역이 산악 지대인 데다 도로와 기반시설이 파괴돼 시신 수습과 운구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각각 360만 달러, 우리 돈 약 5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영국은 680만 달러, 약 94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엔은 긴급 자금 250만 달러, 약 34억5000만 원을 배정했고, 유럽연합과 국제적십자·적신월사연맹도 지원에 동참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수색·구조 전문가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구조 당국은 실종자 규모가 워낙 큰 만큼 초기 72시간 이후에도 생존자를 찾기 위한 수색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비와 불어난 강물, 붕괴된 도로, 산사태 위험이 겹치면서 구조와 복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재난은 고산지대 빙하 붕괴가 얼마나 빠르게 대형 홍수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빙하가 무너져 생긴 물과 토사가 하천을 따라 쏟아져 내려오고, 다시 암석과 흙이 물길을 막으면서 2차 위험까지 키우는 구조다. 네팔과 티베트 당국은 생존자 구조와 피해 지역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