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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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삶을 바꿔라” 광주비엔날레의 묵직한 초대장

광주가 다시 한 번 거대한 질문의 무대가 됐다. 예술은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지나 여기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이 물음을 정면에 내걸고 관객을 전시장 안으로 불러들인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4일 개막했다. 본전시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다. 올해 주제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문장에서 가져온 말로,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자기 삶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요청에 가깝다.

 

이번 전시는 여러 장소에 흩어지기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한곳에 집중됐다. 관객은 전시관 안에 마련된 다섯 개의 공간을 따라 이동한다. 각각의 방은 분자, 신체, 관계, 풍경, 배움, 우주, 공기, 발화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눈앞의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자연, 기억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차례로 되짚게 하는 방식이다.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광주의 기억이다. 5·18민주화운동의 시간을 견뎌온 ‘오월어머니집’ 어머니들은 주홍 작가와 함께 322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들의 붓질은 과거를 설명하는 기록이면서, 상처를 품고 살아온 삶의 증언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놓인 그림들은 비극을 박제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을 조용히 보여준다.

지역의 감각도 곳곳에 스며 있다. 한국화가 허백련이 무등산에서 가꾼 춘설차를 맛보는 프로그램은 광주의 풍경과 예술, 일상을 한 잔의 차로 연결한다. 개막식에서는 권병준·박찬경의 신작 ‘불림’이 공개됐다. 시민들이 내놓은 쇠붙이를 녹여 만든 악기가 울리며, 평범한 물건이 공동체의 소리로 바뀌는 순간을 만들었다.

 

올해 비엔날레는 ‘누가 예술의 주체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제주돌문화공원의 화산암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전시의 참여자로 등장한다. 수천 년 동안 폭발과 풍화, 침식을 지나온 돌은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의 감각을 전한다. 김선익 작가의 ‘공장의 불빛’은 전시 기간과 맞물려 496시간 동안 이어지는 소리 작업으로, 노동과 산업의 흔적을 청각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전시장 밖도 하나의 무대가 된다. 매일 저녁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외벽에는 제임스 T. 홍의 영상이 상영된다. 세계 지도자들의 사과 장면을 모은 이 작업은 권력자의 말이 진짜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묻는다. 로비의 인공지능 시 짓기 프로그램과 광장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음악 설치는 관람의 문턱을 낮추며 더 많은 시민을 전시 안으로 끌어들인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이번 행사가 지역의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술감독 호추니엔은 다양한 호흡을 지닌 세계를 관객과 함께 걷게 됐다고 말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거대한 이론보다 구체적인 감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돌, 차, 쇠붙이, 어머니들의 그림 같은 재료들은 낯설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시는 관객에게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묻는다. 지금의 삶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아볼 것인가.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