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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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혼자 간 여성 유튜버, 현지 남성들에 둘러싸여 추행

구독자 44만 명을 보유한 여행 유튜버 ‘모르는지’가 아프리카 여행 중 성추행 피해를 당한 영상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르는지가 지난 3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일부가 공유됐다. 해당 영상은 ‘여자 혼자 아프리카 여행 절대 안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게시됐으며, 8월 31일 기준 조회수 100만 회를 넘어섰다.

 

영상 속 모르는지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홀로 여행하던 중 현지 남성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남성에게 비용을 지불한 뒤 오토바이 뒷좌석에 탑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도로 위에서 남성 여러 명이 이들의 이동을 막아섰다. 이들은 오토바이 주변으로 몰려들어 돈을 요구하는 듯한 말을 하며 모르는지를 에워쌌다.

 

상황은 곧 위협적으로 변했다. 일부 남성들은 모르는지의 몸에 손을 대거나 자신의 몸을 밀착했고, 볼에 입을 맞추는 행동까지 했다. 모르는지는 몸을 움츠린 채 비명을 지르며 “만지지 말라”고 말했지만, 남성들의 행동은 한동안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르는지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가져가려는 듯한 장면도 포착됐다. 이후 오토바이가 다시 출발하면서 현장을 벗어나는 듯했지만, 일부 남성은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오기도 했다. 

 

모르는지는 영상에서 당시 상황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아프리카 사파리를 버킷리스트로 삼고 여행을 떠났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으며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여행지를 두고 “진심 최악의 여행지”라고 표현했다.

해당 영상이 뒤늦게 확산되자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많은 누리꾼들은 피해를 당한 유튜버를 걱정하며 해외여행 중 안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치안 상황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혼자 이동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여행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회수나 자극적인 장면을 의식해 위험 지역을 방문하는 문화가 확산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만 피해자를 향한 과도한 비난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추행과 위협적 행동의 책임은 가해 행위를 한 이들에게 있으며, 여행자의 부주의 여부와 별개로 폭력적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해외여행 콘텐츠가 늘어나는 가운데, 여행자의 안전과 현지 치안 정보 확인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특히 혼자 낯선 지역을 이동할 경우 공식 교통수단 이용, 현지 가이드 동행, 위험 지역 사전 확인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에서는 영상 속 상황을 두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이어지는 한편, 해외여행 콘텐츠 제작자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