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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목소리도 뺏겼다..AI가 집어삼킨 중국 방송가

중국의 숏폼 드라마 제작 현장과 라이브커머스 업계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때 수많은 단기 계약 배우와 진행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던 시장이 이제는 AI 영상 제작 도구와 가상 쇼호스트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중국 콘텐츠 산업에서 AI가 제작 비용을 낮추고 생산 속도를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종사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나는 곳은 숏폼 드라마 시장이다. 몇 분 길이의 짧은 영상 콘텐츠를 대량으로 제작하는 이 시장은 그동안 배우, 작가, 촬영팀, 편집자 등 다양한 인력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AI 프로그램이 대본 작성부터 영상 생성, 캐릭터 구현까지 상당 부분을 처리하면서 인간 출연자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추세다.

 

AI 기술 발전은 제작사 입장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바이트댄스가 내놓은 영상 생성 프로그램 ‘시댄스 2.0’ 등 고성능 도구가 등장하면서 실물 배우를 섭외하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장면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촬영 장소와 인력, 장비가 필요했던 작업이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상당 부분 완성된다.

 


현장 배우들은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베이징에서 숏폼 드라마 배우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해 온 그렉 울너는 AI 제작 도구가 확산된 뒤 출연 제안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 주에 여러 작품에 출연할 만큼 바빴지만, 최근에는 관련 일감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전했다.

 

수치로도 AI의 확산세는 뚜렷하다. 동영상 플랫폼 분석업체 데이터에이지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서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드라마 상위 100편 중 89편이 AI를 활용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중국 네트워크 시청협회 자료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올해 1분기 중국에서 새로 공개된 숏폼 드라마는 약 13만 편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AI로 제작된 콘텐츠 비중은 95%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작 속도는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칭화대 메타버스 실험실 연구팀은 예전에는 3~5분 분량 드라마 한 편을 만들기 위해 5명이 약 3개월간 작업해야 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AI 도구를 이용해 하루 이틀 만에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 역시 크게 낮아졌다. 연구팀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숏폼 영상의 분당 제작비는 600~800위안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우리 돈으로 약 11만~15만 원에 해당하며, 기존 제작비의 10분의 1가량이다.

 

일부 기업은 AI의 생산성을 앞세워 대량 제작 체제를 구축했다. AI 애니메이션 기업 지린은 지난 5월 한 달 동안 1분짜리 숏폼 에피소드 8000여 편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공장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라이브커머스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는 유명 쇼호스트의 말솜씨와 팬덤이 판매 실적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AI 디지털 호스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쉬지 않고 방송할 수 있고, 출연료와 관리 비용도 인간 진행자보다 훨씬 낮다.

 

실적 면에서도 AI는 이미 경쟁력을 입증했다. 중국 유명 라이브 스트리머 뤄융하오의 외모와 말투를 학습한 AI 쇼호스트는 7시간 방송에서 5500만 위안, 우리 돈 약 100억 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실제 인물이 직접 방송했을 때보다 높은 성과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AI가 효율적인 대안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 숏폼 드라마 산업에 직접 참여하는 인력은 약 69만 명으로 추산된다. 라이브 방송을 주된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15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AI 전환의 충격을 고스란히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큰 논란은 배우와 진행자의 ‘디지털 복제’ 문제다. 일부 출연자들은 자신의 얼굴, 목소리, 연기 습관을 AI 학습용 데이터로 제공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발적 동의라기보다 사실상 압박에 가까운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진행자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뒤 AI 복제본 제작에 동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출연자를 쓰겠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선택의 여지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설명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AI 도입으로 인한 권리 침해와 해고 분쟁이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장성의 한 노동 변호사는 AI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퇴직금과 보상을 놓고 소송이나 법적 대응에 나서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AI가 중국 콘텐츠 산업에 가져온 변화는 분명하다. 제작사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고, 플랫폼은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역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의 창작 노동은 점점 값싸게 평가되고 있다. 배우의 얼굴은 캐릭터 데이터가 되고, 목소리는 음성 모델이 되며, 진행자의 말투는 가상 쇼호스트의 알고리즘으로 흡수되고 있다.

 

중국 콘텐츠 업계의 AI 확산은 기술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노동권과 초상권, 창작자의 권리 보호 논의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효율을 앞세운 디지털 전환이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 창작자의 자리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