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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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유산이 밤마다 빛난다


전북 군산 원도심이 밤마다 빛의 무대로 변하고 있다. 옛 군산세관 본관부터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까지 일제강점기 수탈과 근대 산업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 영상과 시민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건축물에 영상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철길과 거리를 걸으며 군산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군산’이다. 

 

14일 군산시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오는 20일까지 군산 원도심 일대에서 진행된다. ‘빛을 품은 군산번화구경’을 주제로 9개 근대유산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관람객에게 선보인다.

 

관람은 옛 군산세관에서 시작된다. ‘빛의 씨앗’ 이야기를 따라 내항 철로와 근대화거리 등을 이동하며 약 90분 동안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다. 한 장소에 머물러 영상만 바라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직접 걸어 다니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했다.

 


행사는 군산의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데도 머물지 않았다. 내항 철로를 비롯해 산업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무조건 지우거나 아름답게 포장하는 대신,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작품에 함께 담았다.

 

특히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과 일상의 얼굴을 활용해 전문가의 시선만으로 군산의 역사를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과거의 흔적이 남은 공간 위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겹쳐 놓으면서 근대유산을 오늘의 삶과 연결했다.

 

아이와 손을 잡고 철길을 걷는 가족의 모습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웃과 함께 동네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민들의 모습 역시 전시 안에 담겼다. 오래된 건축물과 철로를 단순히 빛으로 꾸미는 것을 넘어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현재의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번 행사는 특정 건축물 하나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여러 근대유산을 거리로 연결하고 그 사이에 시민들의 삶을 담아내면서 도시 전체를 하나의 전시장처럼 활용했다. 국가유산을 활용하는 범위를 건축물에서 거리로, 다시 시민들의 일상으로 확장한 셈이다.

 

결국 올해 행사가 보여주려는 것은 화려한 영상 자체에만 있지 않다. 오래된 공간에 빛을 더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낼 것인가보다 ‘왜 이 장소여야 하는가’, ‘이 빛을 통해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가까운 행사다.

 

군산의 밤을 밝히는 빛은 근대유산에 남아 있는 시간을 비춘다. 관람객은 옛 세관에서 출발해 철길과 근대화거리를 직접 걸으며 흩어져 있던 장소와 기억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과거의 흔적 위에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더해지면서 군산 원도심은 역사와 현재가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빛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