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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다음 생산거점은 일본?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이어 일본을 새로운 해외 생산기지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움직임이다. 국내 증설과 함께 해외 생산 기반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SK그룹은 일본 현지 합작공장 설립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일부 외신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31일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한·일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최 회장은 현재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검토가 마무리되면 알리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후 일부 외신은 SK하이닉스가 일본에서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추진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급격히 증가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현지 기업과의 합작공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본 기업에 대한 소규모 인수나 공동 투자 가능성도 함께 언급됐다.

 

그러나 SK그룹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최 회장이 일본 내 합작공장 설립을 검토한다고 발언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 투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을 뿐 공장 건설 여부나 투자 지역, 협력 업체 등이 결정된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생산능력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HBM 개당 평균 수출가격은 76.13달러로 전월보다 9.5% 상승했다. 수출 물량은 같은 기간 27.3% 감소했지만 가격이 오르면서 평균 수출단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D램 가격 역시 상승세를 나타냈다. 7월 D램 평균 수출가격은 22.9달러로 한 달 전보다 24.3% 올랐다.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 등에 적용되는 6세대 HBM인 HBM4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D램 투입량이 증가한 영향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 생산 확대가 범용 D램의 공급 여력까지 줄이는 상황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7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한 뒤 실제 생산능력을 확보하기까지 수년이 필요한 만큼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대응해 국내외 생산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두 번째 생산시설인 Y2와 청주 M17에 약 54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Y2에는 차세대 D램 생산시설을 마련하고, M17에는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낸드 수요에 대응할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27일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4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HBM 첨단 패키징 공장 착공식을 진행했다. 해당 시설은 2029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며 엔비디아 등 미국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생산한 D램을 미국 현지에서 적층하고 패키징하는 후공정 거점 역할을 맡는다.

 

일본은 아직 구체적인 투자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후보지로 거론된다. 반도체 소재기업 나믹스와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을 비롯한 주요 협력사가 현지에 있고, 소니와 닌텐도 등 고객사도 일본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히로시마에서 D램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와의 기존 관계도 일본 사업 확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SK하이닉스가 투자한 베인캐피털의 특수목적회사(SPC)는 키옥시아 지분 14%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곽 사장도 고객사와 협력사를 중심으로 낸드 시장을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 지원책 역시 투자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은 자국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기업의 생산시설 건설과 증설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만 TSMC의 구마모토 공장에도 정부 지원이 이뤄졌다.

 

향후 일본 투자가 실제로 추진될 경우 SK하이닉스의 생산 네트워크는 한국과 미국에 일본까지 더해지는 형태로 확대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첨단 메모리 생산능력을 늘리고, 미국에서는 HBM 후공정 기반을 확보하는 동시에 일본의 소재·장비 및 낸드 관련 생태계를 활용하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