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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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제결혼…90일 뒤 남편은 숨졌다

베트남 국적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50대 남성이 결혼 90여일 만에 숨졌다는 사연이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다. 사망한 남성의 지인은 남성이 결혼 과정에서 생계 수단이던 개인택시까지 처분했지만, 결혼 생활이 갈등 끝에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6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달 30일 유튜브 채널 ‘투우부부’에 올라온 제보 영상 내용이 뒤늦게 퍼졌다. 해당 채널은 국제결혼 관련 제보를 바탕으로 관련 사례를 소개해온 곳이다. 영상에는 숨진 남성 A씨와 20년가량 알고 지냈다는 지인의 제보가 담겼다.

 


제보자에 따르면 A씨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제결혼을 알아봤고, 지인을 통해 자신보다 30살가량 어린 20대 베트남 여성을 소개받았다. A씨는 사진만 본 상태에서 결혼을 결심했고, 베트남을 방문한 첫날 현지에서 여성을 만나 전통 혼례를 치렀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직후부터 A씨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이어졌다는 것이 제보자의 주장이다. A씨는 첫날밤 아내의 몸에 문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 비자 발급을 위한 건강검진 과정에서 성병이 확인됐다고 제보자는 전했다. 주변에서는 결혼을 만류했지만, A씨는 이미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인 만큼 관계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A씨의 아내가 한국에 입국한 뒤에도 부부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는 A씨 아내가 남편과 방을 따로 쓰려 했고, 베트남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며 새벽까지 노트북을 사용하는 날도 잦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아내는 더 이상 함께 살기 어렵다며 비자 연장을 하지 않고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갈등은 몸싸움으로 번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보자는 “A씨가 자고 있는데 아내가 얼굴을 때렸고, A씨도 놀라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A씨가 얼굴에 멍과 상처가 난 상태로 자신을 찾아왔다며 관련 사진을 유튜버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후 A씨의 아내는 경찰에 가정폭력을 신고했고 쉼터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A씨가 자신도 크게 다쳤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사건이 쌍방 폭행으로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생전 “아내보다 내가 더 많이 다쳤는데 누가 피해자인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에 따르면 A씨는 이후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여러 차례 자해를 시도했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해 결국 숨졌다. 제보자는 현재 A씨의 사망 경위와 결혼 과정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관계 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영상에서는 A씨 아내 측의 반론이나 입장은 소개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국제결혼 과정의 검증과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한편, “한쪽 주장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이 차가 큰 결혼을 너무 쉽게 결정한 것도 문제”라는 의견도 함께 제기됐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