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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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의대생 10명 중 8명 학교 그만뒀다…무슨 일?


지방 의대생들의 중도탈락이 전체 의대 중도탈락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국 의대에서 학업을 중단한 학생 10명 가운데 약 8명이 비수도권 의대생이었다. 의대 중도탈락자는 2년 연속 380명대를 기록했다. 

 

6일 종로학원이 대학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9개 의대에서 중도탈락한 학생은 모두 383명으로 집계됐다. 중도탈락에는 자퇴뿐 아니라 등록하지 않거나 복학하지 않는 등의 사유로 학업을 중단한 경우도 포함된다.

 

의대 중도탈락자는 최근 들어 크게 증가했다. 2022년에는 178명이었지만 2023년 201명으로 늘었고, 2024년에는 386명까지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383명이 학교를 그만두면서 2년 연속 380명대를 기록했다. 2022년과 비교하면 205명, 115.2%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 격차는 더욱 뚜렷했다. 지난해 전체 중도탈락자 383명 가운데 비수도권 의대생은 301명으로 78.6%를 차지했다. 서울권에서는 48명으로 12.5%, 경인권에서는 34명으로 8.9%가 각각 중도탈락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었다. 2024년에도 전체 중도탈락자 386명 가운데 비수도권 의대생이 309명으로 80.1%에 달했다. 2년 연속 의대 중도탈락자 10명 중 8명가량이 지방권 의대에서 나온 셈이다.

 

비수도권 지역 가운데에서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중도탈락자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이 지역에서는 67명이 학교를 그만둬 전체의 17.5%를 차지했다. 이어 충청권 66명(17.2%), 대구·경북 56명(14.6%), 강원 51명(13.3%), 호남 49명(12.8%), 제주 12명(3.1%) 순으로 나타났다.

 

대학별로 살펴보면 강원대의 중도탈락자가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원광대는 18명으로 뒤를 이었으며 경상국립대와 단국대 천안캠퍼스가 각각 17명, 한양대가 16명으로 집계됐다. 중도탈락자 상위 5개 대학 중 4곳이 지방권 의대였다.

 

중도탈락자가 가장 적은 대학으로는 서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건양대가 꼽혔다. 이들 대학은 각각 2명의 중도탈락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은 지방 의대에서 중도탈락자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수도권 또는 상위권 의대로 다시 진학하려는 움직임을 제시했다. 지방 의대에 입학한 학생 가운데 일부가
현재 다니는 대학보다 선호도가 높은 의대로 옮겨가기 위해 다시 입시에 도전하면서 기존 학교를 그만뒀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의대 모집 규모와 지역인재전형 확대 여부도 중도탈락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2025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4610명으로 전년보다 1497명 증가했다.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전형 모집인원 역시 1913명으로 확대됐다. 다만 2026학년도 전체 의대 모집인원은 3123명으로 다시 감소했다.

 

2027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제가 도입되는 것도 변수다. 지역의사제를 통해 지방 학생들의 의대 진학 기회가 확대될 경우 지방권 의대생들의 중도탈락이나 재진입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7학년도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지방 학생들의 의대 진학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현재와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이들 학생이 상위권 의대로 이동하려는 움직임 역시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