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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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매너 잊은 우크라, 청와대 옐로카드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에 체결된 '북한군 포로 한국 송환 비공개 합의'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사실 자체를 부인하자, 청와대는 "양국 간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행위"라며 공식 해명과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5박 7일간의 순방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이뤄진 이번 조치는 외교 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강경 대응으로 평가된다.

 

청와대는 성기홍 홍보소통수석 명의의 공식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양국 간에 진행된 북한군 포로 송환 협의의 상세한 전말을 전격 공개했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당초 비공개 송환을 먼저 제안한 쪽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였다. 자국 내 비판 여론을 우려한 우크라이나 측이 엄격한 보안을 요청해왔고, 우리 정부 역시 포로 본인과 현지 가족의 신변 안전, 그리고 복잡한 외교 안보적 파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에 전격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우리 측과의 사전 협의도 없이 유엔총회 연설 무대에서 포로 송환 사실을 전격 공표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비공개 합의 파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표하자,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한술 더 떠 "비공개를 합의한 적이 없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성 수석은 이에 대해 "우리 국가원수의 정당하고 사실에 기반한 발언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거듭된 거짓 발표로 왜곡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전면적인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국내에서 '대통령 거짓말 논란'이라는 불필요한 정치적 소모전이 유발됐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는 국익과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 일관된 원칙하에 절제된 반응을 보였으나, 상대국의 왜곡 발표가 계속되자 사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정부 차원의 즉각적인 공식 해명과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응답이 없을 경우 실행할 '추가적인 대응 조치'까지 직접 언급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에 따라 향후 대(對)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이나 외교적 협력 관계 전반에 상당한 재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아울러 청와대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내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성 수석은 "국익이 걸린 엄중한 안보 현안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상대국의 부당한 행위를 두둔하는 국내 일부의 주장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국론 분열에 대한 경계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로 한-우크라이나 양국 관계가 상당 기간 냉각기를 가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외교가의 시선은 우크라이나 측의 다음 대응에 집중되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