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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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도 알아본 그 붓끝, 고려불화가 서울에 온다

 천년 전 고려의 색과 선이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펼쳐진다. 고려불화의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온 혜담스님의 작품 130여 점이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 걸린다.

 

혜담스님의 개인전 ‘붓끝으로 나투신 천년의 장엄, 고려불화대전’이 30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스님이 지난 50년 동안 이어온 고려불화 복원·재현 작업을 집약해 보여주는 자리다. 5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자, 대표작을 묶은 ‘고려불화대전집’ 출간을 기념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는 높이 5m를 넘는 대형 불화 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수월관음보살상, 오백나한상, 아미타삼존상이다. 규모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고려불화 특유의 정밀한 선과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수월관음보살상은 특히 눈여겨볼 작품이다. 관음보살을 감싼 투명한 베일, 이른바 사라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과 흐르듯 이어지는 선묘가 특징이다. 수월관음상은 현존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세계적으로도 귀하게 여겨지는 도상이다. 국내에 남아 있는 작품도 제한적이어서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가 작지 않다.

 

새롭게 조성한 아미타삼존상도 처음 공개된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으로, 망자를 극락정토로 맞이하는 장면을 담았다. 불교의 내세관을 장엄하면서도 따뜻한 이미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와 함께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변상도, 불·보살상, 나한상 등 고려불화의 다양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불화는 섬세한 선묘와 화려한 색채, 금빛 장식, 이상화된 인물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은 문양 하나까지 공들여 그리는 정밀함이 특징이며, 종교적 신앙과 당대 미의식이 함께 담긴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혜담스님은 20대 출가 이후 고려불화의 명맥을 잇는 데 매진해왔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전통 기법을 익히며 지금까지 500여 점의 불화를 그렸다. 특히 화면 뒤편에서 색을 올려 앞면에 은은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배채법 등 고려불화의 제작 방식을 연구해 작품에 적용해왔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고려불화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와 제작이 이어지며 지금은 고려불화를 배우고 그리는 이들이 늘고, 대중적 관심도 넓어졌다. 혜담스님의 작업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프랑스 루브르 국립살롱전에 5회 연속 초대됐고, 네 차례 수상했다.

 

혜담스님은 이번 전시에 대해 “종교적 의미를 넘어 고려시대를 마주한다는 마음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 속에는 선조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겨 있다”며 “고려불화는 매우 섬세한 그림인 만큼 마음을 차분히 하고 천천히 감상하면 좋다”고 전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