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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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석 누구 자리인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교통약자석을 둘러싸고 승객 간 몸싸움이 벌어진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인 승객이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에게 자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격해졌고, 양측 모두 물리적 행동을 보인 장면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의견도 갈리고 있다.

 

16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하철 2호선 노약자석 논란’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 잇따라 올라왔다. 영상에는 중절모를 쓴 남성이 지하철 교통약자석 앞에 서서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담겼다.

 

처음에는 말다툼으로 보였던 상황은 곧 거칠어졌다. 여성은 남성을 향해 손을 내젓는 듯한 행동을 하며 “그냥 가세요”라는 취지로 말했고, 이에 남성은 “내려”라고 소리치며 여성의 옷깃을 붙잡았다. 남성이 여성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듯한 장면이 이어지자, 여성은 놀란 듯 소리를 지른 뒤 남성의 다리 쪽을 향해 여러 차례 발길질을 했다. 

 

해당 영상은 빠르게 확산됐고, 교통약자석의 의미와 이용 기준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교통약자석은 노인만을 위한 좌석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임신 초기나 질병, 장애 등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무조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리를 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여성의 대응이 지나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무리 불쾌한 상황이어도 발길질은 폭력이다”, “처음부터 손을 내젓는 태도가 갈등을 키운 것 같다”, “서로 말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는 의견도 이어졌다. 특히 남성이 먼저 옷깃을 잡은 행동과 여성이 발로 찬 행동 모두 부적절했다는 중립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교통약자석은 노인뿐 아니라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부상자 등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이다. 그러나 실제 지하철 안에서는 이를 ‘노인 전용석’처럼 인식하거나, 반대로 젊은 승객이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사례가 반복되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던 남성에게 한 노인이 자리를 요구하며 이어폰을 빼는 일이 벌어졌고, 이후 몸싸움으로 번져 논란이 됐다. 당시에도 “자리 양보 문화가 강요로 변질됐다”는 의견과 “젊은 세대의 배려가 부족하다”는 반응이 맞섰다.

이번 영상 역시 단순한 자리 다툼을 넘어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 차이를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통약자석의 취지를 존중하되, 상대의 사정을 단정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갈등을 키울 뿐이라고 지적한다. 배려가 필요한 공간일수록 강요보다 대화와 시민 의식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