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생활문화

RM, 이번엔 래퍼 아닌 ‘큐레이터’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김남준)이 무대가 아닌 미술관에서 관객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에서 열리는 기획전 ‘너와 나 사이(Between You and Me)’를 통해 직접 모은 미술품을 선보이고 자신의 시선으로 한국 미술을 소개한다. 

 

RM은 29일(현지시간) SF MOMA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해 “나에 대한 꽤나 긴 자기소개”라고 말했다. 가수로서의 모습을 넘어 자신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작품을 모아온 과정과 한국 미술에 대한 생각을 전시를 통해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는 RM이 직접 수집한 작품 142점과 SF MOMA 소장품 등을 포함해 모두 179점이 전시된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RM의 개인적인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는 박수근 화백의 ‘아기 업은 소녀’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인 ‘하사음 대련’도 전시장에 함께 소개된다. RM이 평소 아끼는 작품들이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RM은 자신이 수집한 작품 가운데 한국 근현대 작가의 작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익숙하지만 해외에서는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전시장에서는 윤형근, 박래현, 장욱진, 권옥연, 김윤신, 도상봉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SF MOMA가 소장한 김환기와 백남준의 작품도 전시된다. 마크 로스코와 앙리 마티스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까지 더해져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방식에도 RM의 손길이 곳곳에 들어갔다. 작품 옆에는 RM이 직접 작성한 감상평이 한글과 영어로 함께 적혔다. 관람객은 RM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서도 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작품을 어디에 걸 것인지부터 액자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까지 RM이 세부적인 부분에 직접 관여했다. 단순히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장에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 전체를 구성하는 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특히 작품 설명을 작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RM은 털어놨다. 전시장에 들어갈 설명문을 100단어 안에 맞추기 위해 수백 개의 작품 설명을 반복해서 쓰고 지웠다고 했다. 자신이 느낀 작품의 의미를 짧은 글 안에 담아내는 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약 2년 전부터 준비됐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RM에게 SF MOMA 측이 전시를 제안하면서 기획이 시작됐다. 이후 RM이 수집해온 작품과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어떻게 연결할지 논의하며 전시를 구체화했다.

 


RM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국내외 미술계에 알려져 있었다. 평소 국내 미술관과 전시를 찾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으며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관심을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해외 관람객에게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기회로 확장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의 변화 속에서 사라진 것과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을 젊은 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다는 것이 RM의 설명이다.

 

RM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이 식민 지배와 전쟁, 빠른 산업화와 발전을 겪으면서 많은 것이 사라지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한국의 젊은이로서 조금 더 새롭고 젊은 시각과 감성을 더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수집해왔고, 그 과정이 이번 전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은 RM이 미술품과 문화유산 등 소장품 구입에 사용해달라며 1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이어온 RM의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개인적인 작품 수집을 넘어 문화예술 후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래퍼로 세계 무대에 선 RM이 이번에는 자신이 수집해온 미술품과 직접 쓴 글, 녹음한 목소리를 통해 관람객에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