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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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대신 KBO 택했다…올해 1순위 하현승은 누구


‘투타 겸업 유망주’, ‘MLB 입단 제의를 받은 고교생’, ‘8년 만에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끈 주역’. 

 

2026 KBO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부산고 하현승(18)이 야구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195㎝의 큰 키에 최고 구속 152㎞를 기록한 데다 투수와 타자 모두에서 재능을 보이며 올해 신인 드래프트 1순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현승은 지난 13일 대만에서 막을 내린 제14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이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8년 만이었다.

 

대회에서 하현승의 활약은 특히 눈에 띄었다. 대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선발투수로 나서 5.2이닝 동안 12개의 삼진을 잡고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일본과 맞붙은 슈퍼라운드에서는 구원투수로 등판해 탈삼진 5개를 추가하며 한국의 역전승에 힘을 보탰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승전이었다. 한일전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하현승은 7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 내주고 8개의 삼진
을 잡으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한국은 하현승의 호투를 앞세워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정윤진 U-18 야구대표팀 감독은 하현승을 두고 “선동열, 최동원급 투수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하현승 역시 결승전 출전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는 지난 17일 부산고에서 “선발투수로 출전해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감독님께 일본과의 결승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며 “완봉승까지 하게 돼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엄준상, 이호민 등 친구들과 함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우승하게 돼 더욱 의미가 컸다”고 밝혔다.

 

부산 출신인 하현승은 수영초와 센텀중을 거쳐 부산고에 입학했다. 고교 입학 이후에는 투수뿐 아니라 타자로도 두각을 나타내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특히 1학년이던 2024년 롯데기 중·고교 야구대회 경남고와의 결승전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6회 말 1사 만루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8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최고 구속 148㎞의 직구를 던졌다. 이때부터 ‘미래의 오타니’라는 평가도 나왔다.

 

성장은 계속됐다. 2년 만에 최고 구속을 152㎞까지 끌어올리며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 잡았다. 투타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면서 그의 이름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알려졌다.

 


하현승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키움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을 게 유력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의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하현승의 선택은 국내 프로 무대였다. 그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에 프로에서 선배님들께 배우며 성장한 뒤 해외 무대에 진출하고 싶어 KBO리그 도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큰 키와 강한 공만이 그의 장점은 아니다. 하현승은 195㎝의 신체조건을 활용하면서도 유연성과 기본기를 꾸준히 다지는 데 집중했다. 부모가 모두 육상 선수 출신인 만큼 운동 능력도 타고났지만, 자신의 체격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는 “키가 크다 보니 뻣뻣해지지 않으려고 유연성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며 “웨이트나 러닝 위주의 운동을 중점적으로 하면서 몸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하현승은 21일 열리는 KBO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는다. 입단 이후에는 구단과 조율해 투수와 타자 가운데 구체적인 보직을 결정할 예정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목표는 프로 무대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국가대표로 성장하는 것이다. 하현승은 “프로에 데뷔해서도 국가대표로 차출돼 우리나라를 빛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고교 시절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기에 체력과 몸을 탄탄하게 만들며 준비해 더 성장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