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스포츠타임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AG 유도 금메달


재일교포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경북체육회)가 일본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유도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인 허미미는 할머니의 유언을 계기로 한국 국적을 선택한 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허미미는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상대로 유효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한국 유도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허미미가 처음이다.

 

경기 시작부터 허미미의 공격이 빠르게 나왔다. 경기 시작 12초 만에 특기인 업어치기를 시도해 유효를 따냈다. 이후에도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기술과 그라운드 기술로 상대를 압박하며 경기 주도권을 잡았다.

 

허미미는 이후 자신의 주특기인 왼팔 업어치기를 계속 시도하며 추가 득점을 노렸다. 점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경기 중반 이후에는 수비에 집중하며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고, 종료 1분10여 초를 남기고 지도를 하나 받기도 했다.

 


그러나 허미미는 흔들리지 않았다. 경기 종료 20여 초를 남겨두고 다시 기습적인 업어치기를 시도했고, 이어 누르기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며 남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결국 경기 초반에 얻은 유효를 끝까지 지켜내며 금메달을 확정했다.

 

결승에 오르는 과정도 순조로웠다. 허미미는 16강에서 필리핀의 조마리하트 라파엘을 한판승으로 꺾었고, 8강에서는 중국의 타오위잉을 한판으로 제압했다. 준결승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슈쿠르존 아미노바를 반칙승으로 물리치며 결승에 진출했다.

 

이번 금메달은 허미미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성장했다. 2021년 한국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유언을 계기로 한국 국적을 선택했고,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 나섰다.

 

허미미는 일제강점기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이기도 하다. 이 같은 가족사가 알려지면서 허미미는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캐나다의 크리스티 데구치에게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어깨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긴 재활을 거치면서 국제대회 출전이 줄어 경기 감각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팀 내부에서도 이번 아시안게임을 당장 금메달을 따내는 대회라기보다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고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허미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 할머니의 묘비에 가져가겠다고 다짐했다. 애국가도 다시 외웠다. 파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며 시상식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겠다는 뜻을 이루지 못했던 만큼 이번에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직접 애국가를 부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금메달을 따낸 뒤 허미미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는 할머니의 유언이 없었다면 자신이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준 할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을 할머니 영전에 바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했다.

 

허미미의 다음 목표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혼성단체전까지 출전해 2관왕에 도전한 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다시 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파리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허미미가 나고야에서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면서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도 마련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