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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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앤서니 홉킨스가 말한 ‘긴 작별’


구순을 앞둔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작별’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삶과 죽음을 생각할수록 인생이 하나의 긴 작별처럼 느껴진다면서도 이를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홉킨스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 8월 발표한 클래식 앨범 ‘라이프 이즈 어 드림(Life Is A Dream)’을 소개하며 “삶에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와 작별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삶의 아름다운 일부로 바라본다는 설명이다.

 

그는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에 이런 생각이 담겨 있다며 “슬프거나 우울하게 들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삶이라는 선물과 그 뒤에 찾아오는 큰 작별을 아름답게 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968년 영화 ‘겨울의 라이온’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홉킨스는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를 선보였다. ‘양들의 침묵’에서는 강렬한 한니발 렉터를 연기했고, ‘남아 있는 나날’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집사를 맡았다. ‘더 파더’에서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을 연기했다. 그는 ‘양들의 침묵’과 ‘더 파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받았다.

 

하지만 음악은 배우로 성공한 뒤 새롭게 시작한 분야가 아니다. 홉킨스는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평생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번 앨범에는 그가 60여 년 동안 작곡한 작품 가운데 12곡이 담겼다. 이 곡들은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아래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성됐다.

 


홉킨스는 자신의 음악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만들어진 것을 두고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자신이 어떻게 아직도 이곳에 있는지 생각한다며 자신의 음악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두다멜이 지휘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꿈이라고 말했다.

 

두다멜에 대해서는 음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불어넣었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음악의 출발점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가족이 있었다. 홉킨스는 웨일스에서 부모와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다며 그 기억이 여러 곡의 영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브래컨 로드’와 웨일스를 향한 마음을 담은 ‘마이 파더랜드’를 비롯해 아내와 조카를 위해 만든 곡도 앨범에 수록됐다.

 

그는 작곡할 때 먼저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이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며 그 이미지가 기억을 다시 불러오고, 그곳에서 영감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창작의 과정을 말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음악을 만들 때는 에드워드 엘가 같은 음악가에게서, 그림을 그릴 때는 파블로 피카소에게서 자극을 받는다고도 밝혔다.

 


88세가 된 지금도 음악에 대한 창작은 이어지고 있다. 홉킨스는 여전히 피아노 앞에서 새로운 곡을 즉흥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자신이 만든 곡들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발전시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평생 배우로 살아온 홉킨스에게 음악은 또 다른 삶의 기록이 됐다. 수십 년 동안 써온 곡과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에 대한 마음을 한데 담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는 연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