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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북한 감독으로 월드컵 가고 싶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무대에서 북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정대세가 지도자로서 새로운 꿈을 밝혔다. 선수로 밟았던 월드컵 무대에 이번에는 감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포부다. 그가 마음속에 품은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북한 대표팀 지휘봉이다.

 

일본 매체 풋볼존은 13일 현재 Y.S.C.C. 요코하마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정대세의 인터뷰를 전하며 그의 장기적인 구상을 소개했다. 정대세는 올해 8월부터 일본 JFL 소속 Y.S.C.C. 요코하마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미즈 S펄스, 마치다 젤비아 등 일본 무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은퇴 후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정대세가 그리고 있는 축구는 분명하다. 그는 전방 압박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축구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위르겐 클롭 감독의 축구를 언급하며 “전방에서 강하게 압박해 공을 빼앗고, 곧바로 수직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이 승리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상만 앞세우지는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대세는 모든 감독에게 자신이 원하는 축구가 있지만, 그것을 언제나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보유한 선수 구성과 팀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뒤, 그 안에서 최선의 전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초보 코치지만, 선수 시절의 경험만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공격수 출신인 그는 선수들의 마무리 능력을 키우는 데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대세는 “내가 공격수였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선수들에게는 큰 잠재력이 있고, 그들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을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스트라이커로서 쌓은 감각과 경험을 지도 현장에서 살려보겠다는 각오다.

 

그가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은 뒤 도달하고 싶은 곳은 북한 대표팀이다. 정대세는 “꾸준히 경험을 쌓아 언젠가 북한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선수로 출전했던 무대를 감독으로 다시 밟고 싶다는 꿈이다.

 

정대세에게 월드컵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 공격수로 출전했다. 당시 북한은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한 조에 묶였다. 카카가 이끄는 브라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 디디에 드로그바가 버틴 코트디부아르와 맞붙은 이른바 ‘죽음의 조’였다.

 

북한은 조별리그 3전 전패로 탈락했지만, 정대세에게 그 경험은 축구 인생의 강렬한 장면으로 남았다. 특히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앞두고 국가가 울려 퍼지자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당시 월드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도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물론 정대세도 자신의 목표가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재일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자랐고, 한국에서도 활동해온 자신의 배경을 언급하며 북한 대표팀 감독이 되는 길에는 높은 장벽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과거 한국 여권 취득 등 여러 상황을 농담 섞어 언급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관계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전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정대세는 “결국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실적”이라고 했다. 일본 J1리그 팀을 맡아 우승 같은 확실한 성과를 낸다면, 언젠가는 관심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북한 대표팀의 지도자 선임 구조가 외부 인사에게 쉽게 열려 있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정대세는 북한 축구가 전통적으로 군 관련 팀을 중심으로 선수와 지도자를 발탁해 대표팀으로 연결해온 흐름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일 조선인 출신 지도자가 북한 축구와 연결된 사례도 있는 만큼, 변화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정대세는 당장 먼 목표만 바라보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야망이 너무 커 현실과의 차이 때문에 괴로웠지만, 지금은 눈앞의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팀 감독이라는 거대한 꿈을 품고 있지만, 출발점은 현재 맡고 있는 코치 역할이다.

 

월드컵에서 눈물을 흘리던 공격수는 이제 벤치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선수 정대세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면, 지도자 정대세는 성과로 자신의 길을 증명해야 한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다시 한 번 월드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